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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기업들이 직접적으로 입은 손실이 최소 1000억유로(약 144조원)라는 보도가 나왔다. 에너지·금융 기업들 손실 커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현지시간) 유럽 대기업 약 600곳의 연례 보고서와 재무제표를 조사한 결과 이 중 29%(176곳)가 러시아에서의 사업 중단 또는 축소, 매각 때문에 손실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업종별로는 에너지 기업의 상각 규모가 컸다. BP와 셸, 토탈에너지 등 유럽 에너지 기업 3곳에서만 406억유로에 이르는 손실이 보고됐다. 대신 에너지 기업들은 전쟁으로 원유 등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러시아에서의 손실 규모를 넘는 이익을 얻었다. 은행, 보험사, 투자회사 등 금융사들이 본 손실은 175억유로로 추산됐다.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로스뱅크 등 러시아 사업을 헐값에 매각하면서 31억유로의 손해를 봤다.
유틸리티 기업은 147억유로, 자동차 제조사를 포함한 중공업 분야도 136억유로의 손실을 봤다. 프랑스 르노가 작년 5월 모스크바 공장 지분을 매각한 후 23억유로를 상각 처리했고, 11개 유럽 자동차 제조사는 64억유로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FT는 이를 모두 합하면 유럽 기업이 떠안은 손실 규모가 1000억유로 이상일 것으로 봤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해 2월 시작된 뒤 서방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철수했고, 정리하지 못한 사업과 자산을 러시아 정부에 사실상 몰수당했다. 러 외국기업 출구전략 더 조여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러시아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은 서방 기업들의 손실이 더 불어날 가능성도 크다. 우크라이나 키이우경제대(KSE) 집계에 따르면 전쟁 이전에 러시아에 진출한 1871개의 유럽연합(EU) 기업 중 50% 이상이 여전히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영국 유니레버, 스위스 네슬레, 이탈리아 은행 유니크레디트, 오스트리아 은행 라이파이젠 등이다.
컨설팅기업 컨트롤리스크의 나비 압둘라예프 이사는 “러시아에 남아 있는 기업은 이미 철수한 기업보다 앞으로 훨씬 더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향후 러시아 사업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해야 했던 기업에는 당시 ‘황급히 달아나는 전략(cut and run)’이 최선이었다는 사실이 자명해지고 있다”며 “빨리 철수할수록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나 블라수크 KSE 연구원은 “러시아에 남아 있는 그룹은 고위험 도박을 하고 있다”며 “러시아 크렘린궁이 외국 기업의 출구전략을 점점 더 조이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사업에서 배당금 등을 받아 투자금을 일부라도 건질 수 있다고 기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올해 1월 독일 최대 화학기업 바스프가 보유하고 있는 원유 가스 기업 빈터셸데아가 크렘린궁의 러시아 사업 몰수 조치 때문에 20억유로의 현금을 상각 처리했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사이먼 에베넷 스위스 생갈대 경제학 교수는 “러시아에서 타격이 큰 서방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애초에 러시아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럽 기업의 평균 대손충당금은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시장은 유럽 전체 대외 투자의 3.5%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