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역에서 신용등급 강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재정 건전성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고 있어서다. 최근 부채 위기에 시달린 미국의 신용등급도 한 단계 하향 조정됐다. 개발도상국을 비롯해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주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등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될 위험이 크다고 보도했다. 대다수 국가의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육박하고 있어서다.
앞서 피치레이팅스는 지난 1일 미국의 신용등급을 종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 건 1994년 이후 처음이다. 피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31조 달러에 달하는 국가 부채를 강등 이유로 꼽았다. 공공 재정에 대한 새로운 감시체계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신용평가업계에서 국가 부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고(高)금리 때문이다. 지난해 각국 중앙은행은 앞다퉈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지난 40여년간 지속된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 국가 부채로 인한 차입비용 부담이 과거보다 커진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지원금 확대가 맞물려 나랏빚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클라우스 바더는 "공공 부문 부채는 최근 매우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며 "선진국, 신흥국 가릴 것 없이 공공 부채가 장기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위기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은 혼란을 키웠다. 피치레이팅스는 지난 4월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프랑스의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 문제를 이유로 꼽았다. 여기에 연금 개혁에 따른 사회적 혼란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피치는 "연금 개혁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정부의 재정 건전화 정책이 난항에 빠졌다"고 짚었다.
영국도 정치권에서 혼란을 야기하며 신용도를 낮췄다. 지난해 10월 무디스는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등급 자체는 Aa3를 유지했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감세정책의 여파로 영국 경제의 위기가 커져서다. 이후 감세안을 철회한 트러스 전 총리는 총리 임명 45일 만에 퇴진하며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얻게 됐다.
이탈리아도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140%대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신용평가업계에선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이 올해 안에 '투자부적격(정크본드)' 등급으로 추락할 것이란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 신흥국의 부채 규모도 올해 1분기 100조달러를 넘겼다. 차입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신용평가사의 평가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단 기준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부실채권에 대해 고평가를 내린 점도 신용평가사의 신뢰도를 낮췄다.
실제 일본은 2011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GDP 대비 부채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미미했다는 평가다. 2017년 무디스가 중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지만, 중국 채권 판매액은 지난해까지 3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각국 정부의 비판에도 신용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국가의 정치·경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루는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엘리슨 존스턴 오리건주립대 교수는 "신용평가사가 한 국가에 대해 제대로 분석하지 않으면 쓴소리를 듣기 쉽다"며 "때문에 누구보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곳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