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형의 런던eye] 유연근무, 좋은 회사의 뉴노멀

입력 2023-08-02 18:09
수정 2023-08-03 00:16
영국 런던 도심으로 가는 전철역은 아침마다 늘 붐빈다. 약 25분 탑승 시간에 내야 하는 편도 요금은 6.4파운드(약 1만560원)로 꽤 큰 금액이다. 대중교통 요금이 비싸니 자동차로 출근하면 어떨까? 도심혼잡통행세 하루 15파운드(약 2만4750원), 주차요금 1일 72파운드(약 11만8800원)가 소요되니 교통체증 없이 기차,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이 훨씬 낫다.

어김없이 붐벼야 할 전철역이 한산하다. 이렇게 승객이 없는 날은 금요일이다. 런던에선 많은 사람이 금요일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팬데믹 기간의 경험을 통해 회사와 직원 모두 유연근무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중요하다고 여겼던 시간과 장소가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영국 유연근무제도는 ‘Work From Home(WFH)’이라고 불리는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엔데믹 이후 대면근무가 가능한 상황에서도 유연근무할 수 있는 직장으로 이직하는 것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유연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영국에는 플렉사(Flexa)라는 유연근무 검색플랫폼이 등장했다. 플렉사는 전면 재택, 부분 재택, 애견 친화적 근무환경, 육아휴직 복지 특화 등의 검색조건으로 유연근무 가능 회사를 검색할 수 있고 그 회사가 얼마나 유연한지 점수(플렉사 스코어)도 매겨 구직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플렉사는 영국에서 시작했으나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유연근무 플랫폼인 만큼 전 세계 기업과 구직자를 대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플렉사의 고객 기업은 유연근무 조건 제시를 통해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다.

시행 초기 유연근무 도입에 비판적이던 기업들도 이제는 유연근무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로 사무 면적이 줄어들면서 건물 임차료, 전기요금, 소모품비 등이 현저하게 줄어 고정비용이 대폭 감소했다.

세계적으로 상업중심지역 건물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연근무 제도 확산으로 기업들이 사무 공간을 줄여 나가고 그 공간마저 공유하면서 오피스 수요가 대폭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공유오피스 비즈니스 모델이 안착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최근 전 세계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 주요 키워드가 공유경제다. 자동차, 주차장, 점포, 사무공간 등 조금이라도 공유가 가능하고 비용도 줄여 나가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행하고 있다. 공유오피스 ‘위워크’에 가보자. 방문하면 두 번 놀라게 된다. 개인 책상만 있는 협소한 사무 공간에 놀라고, 자유롭게 얘기하고 식음료를 먹는 공동장소는 너무 넓고 시설이 좋아 놀란다. 다양한 크기의 회의실을 구비해 인원 규모에 상관없이 회의가 늘상 가능하다. 커피, 맥주 등도 무료로 제공되다 보니 직원들이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기업으로서는 고정비를 줄여 몸집이 가벼워지는 ‘다이어트 경영’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팬데믹 이후 기업은 사무실을 임차할 때도 책상, 의자 등 비품이 완비된 사무 공간을 찾고 있다.

한국은 재택근무에 대한 인식이 아직 호의적이지 않다. 자본주의 역사가 긴 유럽의 나라처럼 개인별 업무분장이 세밀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경우가 많아 성과측정 체계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개개인의 삶을 우선시하고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 높은 연봉보다는 워라밸이 가능한 기업을 선호해 유연근무 제도가 구비된 회사가 인기를 끌 것은 자명하다. 개인화와 인구 고령화로 예전의 매출, 건물, 외형, 허세보다는 순이익, 공유, 내실, 알뜰소비를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마른 수건을 짜는 시대가 아니라 이제는 수건을 공유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