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운동권 출신인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과학이 만능입니까. 200년 뒤에 해양 생태계 피해가 나면 책임질 수 있습니까?” 과학자 출신인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과학적 검토 결과를 믿지 않으면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결과를 믿어야 합니까?”
방사능의 영향을 재는 단위는 밀리시버트(mSv). 처리수 방류 시 후쿠시마 바다 인근 주민들이 1mSv 정도의 방사능에 피폭되려면 3만 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IAEA가 공개한 데이터를 토대로 계산한 수치다. 인간은 방사능 청정 지역에 살지 않는다. 그냥 자연에서도 연간 2.4mSv의 방사능에 노출된다. 3만 년에 1mSv? 거의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다. 게다가 그 바닷물이 흘러 흘러 한국 앞바다까지 도달하게 되면? 그 위험도는 더욱 희석돼 소수점 한참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방사능에 대한 과학의 대답은 명확하지만, 정치적 영역에선 정답과 오답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막무가내 선동도 공포라는 외피를 걸치면 힘이 세진다. 과학은 인간의 본능적 비합리성에 종종 무기력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비합리성의 원인을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찾기도 한다. 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의 설명. “밤길을 걷다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면 대다수 인간은 도망가는 쪽을 선택한다. 소리의 크기, 주변의 지형 등을 토대로 ‘토끼나 사슴일 확률이 높다’라고 합리적 판단을 하는 부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 우리는 일단 튀고 보는 사람들의 자손이다.”
중세의 종교도 인간의 이런 취약성에 의존했다. ‘죽음’이라는 근원적 두려움을 동력으로 ‘지옥’을 과대 포장했다. 이승의 죄악을 돈으로 퉁칠 수 있다는 ‘면죄부 비즈니스’마저 유행한 이유다. 근대에 접어들며 과학적 발견이 봇물을 이뤘지만, 본능적 두려움을 깨는 덴 매번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다 지옥 가면 어떡할래?”라는 협박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은 이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화성에 주거지를 만들겠다는 사업가가 나올 정도로 과학이 발전했지만, 인간은 아직도 원시적 본능을 품고 산다. 미디어가 범죄, 재난, 주가 폭락 등의 불안을 자극하는 기사를 우선 배치하는 이유다. 최근 불거진 아스파탐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매일 먹는 음식이 발암물질일 수 있다는 공포는 잘 팔리는 소재다.
지난달 14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을 발암물질 등급 중 세 번째인 2B군에 포함했다고 발표했다. 자세히 뜯어보면 그리 두려워할 발표가 아니다. 2B군에는 우리가 즐겨 먹는 김치(절임 채소)도 들어간다. 전자파를 내뿜는 휴대폰도 2B군이다. 휴대폰을 들고 김치를 먹으면서 암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오히려 한 등급 더 높은 2A군이다. 그럼에도 식품업체들은 아스파탐 대체재를 찾느라 분주하다. 아스파탐이 들어간 제로콜라를 하루에 55캔 정도 위장에 들이부어도 안전상 큰 문제가 없다는 과학적 데이터는 한 번 각인된 공포를 이겨낼 수 없다.
비이성적 선동에 맞서 과학을 지켜낼 방법은? 지난달 초 방한했다가 입국장에서 봉변당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의 말에 해답이 숨어 있다. “의견이 다른 분들께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것, 그것이 제 몫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