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찾은 인천 부평동 소망병원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쇠사슬로 잠긴 정문에는 법원의 강제집행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바닥에는 각종 고지서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의료기기들은 당장 진료를 시작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멀쩡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이 병원을 운영해온 나다의료재단은 지난달 인천지방법원에서 파산선고 결정을 받았다. 2019년 법인 설립자인 병원장이 의료법 위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데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요양원 입소자까지 확 줄며 폐업 수순을 밟았다. 재단을 대리하는 이정선 법률사무소 건우 변호사는 “법인 자산을 매각해 채무를 변제하려고 했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허락하지 않아 최후 수단인 파산 절차를 밟았다”고 했다.
지난해 전국 의료법인 파산 선고가 전년 대비 네 배 급증하는 등 의료법인 줄도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의료서비스 수요가 쏠리는 데다 포화 상태에 이른 지역 중소 의료법인의 적자가 누적된 영향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환자가 끊기다시피 하며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중소 의료법인 가운데 파산 신청을 고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의료법인 32%가 적자인 부산 등 심각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전국 의료법인은 1322개로 ‘병상 수 30개 이상~100개 미만’ 요양병원(42.4%)과 병원(19.8%)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6대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 시·군에 64%가 분포한다.
지방 의료법인이 체감하는 경영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첨단 의료시설과 유명 의료진을 앞세운 수도권 대형병원이 지방 환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중소병원과 요양원을 찾는 환자가 급감한 것도 타격이 컸다.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은 2018년 312개에서 지난해 262개로, 요양병원은 639개에서 561개로 줄었다.
지난해 파산선고가 가장 많았던 부산(3건)에선 의료법인 부실화가 지역 현안으로 떠올랐다.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소재 의료법인 104개 가운데 적자운영 법인은 2021년 25개에서 지난해 34개로 늘었다. 이 가운데 자본잠식에 빠진 법인은 22개였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1300여 개 가운데 30% 이상은 이미 ‘한계 의료법인’”이라고 말했다.
회생절차를 밟는 의료법인도 꾸준하다.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에서 네 건의 의료법인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나왔다. 지난달에는 경남 거창에서 서경병원을 운영해온 아림의료재단이 창원지방법원에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경남 함양·합천 등의 거점병원 역할을 하던 이 병원은 농촌 인구 감소로 수년째 적자가 누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 매각도 허가받아야부실 의료법인의 퇴로를 막는 낡은 제도도 의료법인 파산이 늘어난 요인으로 꼽힌다. 의료법 제48조 제3항은 “의료법인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정관을 변경하려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자산을 매각해 채무를 변제하려면 주무관청이나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허가가 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는 게 의료법인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공공성을 고려해야 하는 지자체 입장에서 의료법인 자산 매각을 허락하거나 법인 설립을 취소하는 데 느끼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부실 의료법인은 법원에서 파산 선고 또는 회생 개시 결정을 받을 때까지 한계 상황인 병원을 억지로 끌고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의료법인업계는 수십 년째 “인수합병 제도 마련 등 부실 의료법인의 퇴로를 열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 영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막혀 입법 논의조차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