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세계 40여 개국에서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진정제가 1만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1980년대에는 진통제를 복용한 사람들이 사망해 약 3000만 병을 회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의약품 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운 대표적 약화(藥禍) 사고 사례들이다.
의약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1962년 미국에서는 식품·의약품·화장품의 안전성을 강화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Good Manufacturing Practice)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현대화된 의약품 품질 관리의 출발점으로,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와 주요 국가들도 이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GMP는 쉽게 말하면 의약품 공장과 생산 설비를 비롯해 원료와 제조, 포장 등 약을 만드는 전 공정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한 기준이다.
우리 정부는 1977년 의약품 품질관리기준을 도입하고 1994년 의무화했다. 국내 제약산업계는 효과적이면서도 안전한 약을 제조하기 위해 이 기준에 맞춰 의약품 품질 수준을 높여나갔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요구에 부합하는 최첨단 의약품 제조공장을 건립하는 등 기업들의 생산공정 고도화 작업은 지속 추진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제약기업이 당초 신고한 대로 의약품을 만들지 않은 사례를 포착, 해당 의약품의 제조와 판매를 중지시켰다. 의약품에 들어가는 첨가제 용량을 임의대로 증감했다는 것이다. 첨가제는 의약품의 모양을 잡거나 맛의 보완을 위해 활용되는데, 그 양에 따라 약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 산업에 대한 국민적 성원이 높은 시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의약품 허가부터 생산, 유통, 사용에 이르기까지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제약업의 숙명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일로 산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의약품의 품질은 그 어떤 경우에도 타협해서는 안 될, 최우선의 가치다.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라는 말이 있다. 컴퓨터 용어인데 시스템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중 단 하나가 작동하지 않으면 시스템 전체가 멈춰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단일 장애점을 제거하지 않으면 신뢰는 한순간에 불신으로 돌변한다. 신뢰가 깨지는 순간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막대한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 산업계가 깊이 새기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금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