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설계, 제조는 위탁
애플이 자동차를 만들 것인가에 전망은 해묵은 얘기지만 대부분의 예상은 만들 것이라는 쪽에 쏠려 있다. 미국 내 증권가에서도 오는 2026년 애플이 전동화 기반의 애플카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한다. 자율주행 관련 특허 취득도 이어지고 사진도 공개되면서 ‘타이탄 프로젝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어서다.
관심은 애플이 생산을 누구에게 맡길 것이냐다. 앞서 소니는 혼다와 합작을 통해 첫 차종 '아필라(Afeela)' 생산을 시도했다. 그 이유는 혼다의 하드웨어 제조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애플 또한 이동 수단을 제조한 경험이 없어 누군가에게 생산을 맡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애플카 생산을 맡게 될 위탁 제조기업에도 시선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여기서 가장 주목도를 높이는 곳은 이미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대만의 폭스콘(Foxconn)이다. 폭스콘은 제조 영역을 아이폰 등에 머무르지 않고 이동 수단으로 확대한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 결과 2021년 대만의 자동차기업 위룽자동차(Yulon Motor)와 손잡고 전기차 전문기업 '폭스트론(Foxtron)'을 설립했다. 곧 이어 전용으로 개발한 'MiH(Mobility in Harmony)' 플랫폼 기반의 BEV '모델C'를 2021년 공개한데 이어 지난해는 '모델B'를 선보이기도 했다. 중국과 미국에 생산 시설을 갖추고 제품 종류를 확대해 본격적인 전기차 시장에 참여한다는 의지를 붙태운다.
그런데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떠나 자동차를 개발, 생산하려면 기본적인 샤시도 만들어야 한다. 이때 적지 않은 개발 비용이 투입되는데 시장에서 BEV 판매가 저조하면 개발 비용은 곧 막대한 손실로 직결된다. 이때 손쉬운 해결책은 샤시 전문기업과 협업하는 일이다. 실제 폭스콘은 최근 변속기 및 샤시 전문기업인 독일 ZF 산하 샤시 모듈 조립 기업 'ZF 샤시 모듈'의 주식 50%를 취득해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향후 합작사를 아예 폭스콘 산하계열로 두는 계획도 마련했다. ZF는 샤시 사업의 성장을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하지만 폭스콘은 폭스트론의 MiH 플랫폼 결합 샤시로 ZF 제품을 사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내연기관 샤시를 제조해 왔던 ZF에게 MiH 플랫폼에 필요한 샤시 개발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터리 셀도 직접 만들어 쓴다. 원자재 공급 생태계가 가동되면 LFP 소재의 셀 공장을 대만 및 인도네시아에 짓고 배터리 스왑 방식도 전개한다. 결국 배터리 셀 제조, 팩 조립, 전동화 플랫폼에 이어 샤시까지 모두 준비를 해가며 전기차 생산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중이다.
하지만 폭스트론도 위험은 있다. 자신들이 내놓는 BEV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지는 그들도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신생 기업이어서 제품 인지도가 낮고 소비자의 신뢰 검증도 거치지 않아서다. 그래서 폭스트론은 애플의 타이탄 프로젝트를 주목한다. 애플이 생산을 맡기면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 한다. 하나의 공장에서 애플 위탁 생산으로 생산 이익을 확보해 폭스트론 브랜드의 손실 위험을 낮추는 식이다. 이미 애플 디바이스를 만들고 있어 협업 가능성을 높이고 하드웨어 생산 기술은 위룽자동차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애플도 폭스콘의 이런 움직임을 내심 반길 수 있다. 위탁을 고려한다면 폭스트론 또한 새로운 후보가 될 수 있어서다. 애플로선 누구든 자신들의 제품을 잘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이런 점에서 향후 전동화 기반 신생 기업은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 특히 IT 기업과 손잡고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은 끊이지 않는다. IT 기업에게 지능을 가진 전기차는 생태계를 확장시켜주는 IT 디바이스의 연장 개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능이 높아질수록 사고 위험은 줄어 '안전(safety)'을 내세운 전통의 자동차기업의 경쟁 요소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테슬라가 휴대전화를 제조해 자신들의 전기차와 호환성을 높이는 것 또한 충분히 고려할 수 있어서다. 이른바 전기차와 휴대폰의 구분이 불분명해질수록 전통과 신생 기업을 나누는 시선도 달라진다. 휴대전화 관점에선 자동차회사가 신생이지만 전기차 시선으로는 IT 기업을 신생으로 분류할 뿐이다. 그리고 서서히 두 산업 간의 경쟁과 협력의 막이 오르고 있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