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전기차 구매를 고민해온 직장인 신모씨(34)는 최근 마음을 접었다. 내연기관차보다 차값이 비싸도 충전을 비롯한 유지비가 덜 들기 때문에 몇 년만 타면 이득을 볼 것이란 생각이었지만, 충전요금 인상 속도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구축 아파트에 살아 ‘집밥(집에 설치된 충전기)’이 없다는 점도 문제였다.
그는 “기름값은 국제 유가에 따라 오르내리지만 전기료는 한 번 오르면 다시 안 내리지 않냐”며 “이대로면 전기차 충전료가 ㎾h당 400~500원을 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다”고 했다. 늘어나는 전기차 유지비
전기차 충전요금이 줄줄이 오르면서 전기차의 최대 강점이었던 ‘경제성’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 전기차 충전기 시장 상위 업체 10곳 가운데 올 들어 충전료를 인상한 곳은 8곳이다. 이들은 모두 국내 23만6000기에 달하는 전체 전기차 충전기의 73%를 운영하고 있다.
충전료 인상 ‘러시’는 하반기 들어 더 거세졌다. 지난달에만 1위 업체 파워큐브와 GS커넥트(3위), 이지차저(9위)가 일제히 충전요금을 인상했다. 5·6위 업체인 차지비와 SK브로드밴드의 홈앤서비스도 1일부터 나란히 요금을 올리기로 했다.
대형 업체가 충전료 인상에 나서면 중소형 업체도 줄인상에 동참할 것으로 점쳐진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7월 한국전력의 전기차 충전요금 할인 특례가 끝난 데다 최근 1년 새 전기요금도 세 차례나 올랐다”며 “원가 부담이 커지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인상 폭은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완속 충전기를 운영하는 파워큐브의 공용 충전기 요금은 1년 전 ㎾h당 168원에서 올 7월 227.8원으로 35.6% 올랐다. G차저 사업자인 GS커넥트도 완속 충전요금을 1년 새 ㎾h당 178.9원에서 227원으로 27% 올렸다. 둘 다 1년 새 세 차례나 인상했다.
급속 충전요금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급속 충전기를 운영하는 환경부는 지난해 할인 특례 종료에 따라 50㎾ 급속 요금을 ㎾h당 292.9원에서 324.4원으로 올렸다. 민간 업체 대부분은 환경부의 급속 충전요금을 그대로 준용한다.
1㎾h로 5.5㎞를 달리는 현대자동차의 코나 전기차를 1년에 1만5000㎞ 주행한다면 연간 완속 충전비는 62만1000원 정도 든다. 1년 전(45만8000원)보다 36% 오른 셈이다. 급속 충전만 하는 경우엔 연간 충전비가 79만9000원에서 88만5000원으로 뛴다. 같은 기간 유가 하락에 따라 휘발유차 주유비는 15% 내린 것과 대조적이다.
내연기관차에 비하면 여전히 연료비가 저렴하지만 격차는 빠르게 줄고 있다. 보조금을 받아도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40%가량 비싼 전기차의 ‘유지비 장점’이 퇴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기차는 보험료도 내연기관차보다 24%가량 비싸다. 충전료 계속 오를 듯충전료 상승은 지속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한국전력의 막대한 적자 해소를 위해선 전기차 충전요금이 최소 ㎾h당 560원까지 올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난립해온 충전 업체 간 옥석 가리기가 이뤄지고 있는 점도 요금 인상 요인으로 꼽힌다.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충전료 인상에 따라 전기차 대중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용 충전기를 설치하기 어려운 한국 주거 환경 특성상 개방형 충전기라도 많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요금까지 오르면 전기차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해외에서도 전기차의 경제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독일에선 작년 9월 전기요금 급등으로 테슬라 전기차 충전비가 동급 혼다 내연기관차의 주유비를 추월하는 일도 벌어졌다.
중고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구매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가 중간 단계인 하이브리드카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