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기술패권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산업정책을 모방한 듯한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미국 경제의 회생 전략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즉 2021년 말 도입한 1조달러 수준의 사회 인프라 및 일자리 창출 법안(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 2022년 도입한 280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및 첨단산업 육성법안(CHIPS and Science Act)과 1조5000억달러 규모를 웃도는 야심적인 인플레이션 억제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등이 그것이다.
1783년 미국 정부가 출범한 이래 줄곧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해온 미국의 경제철학과 질서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중국의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그대로 빼 박은 듯한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정책과 대외정책은 과연 지속 가능한 정책인지 문제 제기가 그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극단적인 정책 대립을 보여온 미국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우파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세력이 동의하는 유일한 대목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세력을 아우르면서 유권자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제일 손쉬운 정책은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 정책임을 바이든 행정부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즉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 금지 등의 정책과 함께 미국 내 반도체산업 등 제조업 부활 정책을 다양한 정책 법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바이든 행정부의 자국 중심주의에 기반한 산업정책에 직면해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산업, 특히 제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지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필두로 세계 선진국에 확산하는 자국 내 제조업 부활을 위한 경쟁적인 산업정책과 보호무역정책이 지속 가능한 산업정책 및 무역정책은 될 수 없으며, 결국 방향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세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첫째, 과거 일본과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정부 주도의 제조업 육성정책이 경제성장을 주도한 지난 세월의 ‘제조업 신화’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제조업 신화는 농업과 서비스업에 비해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었을 때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기타 선진국에서는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서비스업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 중국 등 제조업 중심 국가에 비해 절대열위에 처한 만큼 인위적으로 제조업을 부활시키려는 정책 노력은 그 정책 비용에 비해 효과가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과거의 산업정책들이 경제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시장 실패를 교정했기 때문인데, 현재 선진국들의 산업정책은 오히려 시장 실패를 초래하고 있다. 과거 아시아의 유치산업 보호정책이나 유럽의 에어버스 지원 정책은 잠재적 효율성을 갖춘 산업을 현실화했다. 그러나 현재 선진국들의 반도체 육성 정책이나 제조업 육성 정책은 잠재적 효율성과는 무관한 인위적 자본 투입으로, 결국 과잉 생산과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술 변화와 경제적 효율성을 무시한 정치적 동기에 의한 산업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은 과거 중남미 산업정책의 실패 사례가 분명히 보여준다. 작금의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인들도 주목해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