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독립문역 부근에서 북한 음식점 ‘능라밥상’을 운영하는 탈북 여성 1호 박사 이애란 사장의 탈북 직후 이야기다. 미8군 식당에 가게 됐는데, 남들 따라 난생처음 들어본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커다란 고깃덩어리와 함께 통감자가 딸려 나왔다. 그는 일순 트라우마에 빠졌다.
평양에 살다가 산간마을로 쫓겨난 그의 가족은 하루 세끼를 오로지 감자로 때웠다. 삶은 감자를 으깬 것이 밥이고, 거기에 소금을 친 것이 반찬, 알감자가 간식이었다. 그날 음식에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결국 집에 돌아와 식사했다. 그는 지금도 감자 삶은 냄새가 가장 싫다고 한다.
1990년대 중후반 100만 명대 아사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농담이다. “우리는 ‘ㄹ’자로 끝난 것이 죄다 부족해서 이 고생을 하고 산다. 쌀, 물, 불, 땔(감), 일(감).” 식량 부족, 치수 실패에 따른 농업용수 부족, 전력난에 더해 민둥산이라 땔감이 없고, 근본적으로는 일거리가 없는 사회에 대한 자조적 표현이다.
6·25전쟁 이후 20년 정도 지난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 주민의 1인당 소득은 우리보다 앞섰던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주체’를 내세워 스스로 고립의 길을 택하고 서해갑문 같은 대규모 날림 토목공사, 88서울올림픽에 자극받아 2만 명에게 무료 숙식을 제공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100억달러의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린 순천 비날론공장 등 대규모 실정이 겹치면서 경제가 오히려 퇴보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의 60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1인당 소득으로 보면 연간 143만원으로, 한국의 30분의 1 수준은 물론 한 달 최저임금(191만4440원)보다도 적다.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군비 지출은 25% 수준으로 세계 최고다. 지난해 73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쓴 비용은 5억6000만달러(약 7160억원)로, 연간 식량 부족분 120만t(약 4억1700만달러)을 사고도 남는 돈이다. 이번 ‘전승절’ 열병식에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화력을 과시했다. 인민은 굶어 죽어가는데 지도자는 힘자랑만 하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