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어제 내놓은 ‘2023년 세법개정안’은 경제 활력을 높이고 민생경제를 회복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K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영상콘텐츠 제작비의 세액공제율을 상향하고,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소득세·법인세 감면 폭을 확대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결혼자금에 대한 증여세 공제 한도를 현실화한 것도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후한 평가를 주기는 어렵다. 과감하고 근본적인 개편보다 또다시 ‘찔끔 개선’에 그쳤기 때문이다. 경기 진작을 위한 세제 개편 대상 중 핵심인 법인세율과 상속세율 인하는 쏙 빠졌다. 지난해 과세표준 구간별로 1%포인트씩 내리긴 했지만, 지금처럼 높은 법인세율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어렵다. 73년째 고착화한 징벌적 상속·증여세 틀은 이번에 손도 못 댔다.
첨단산업 육성 의지도 체감하기엔 미흡하다. 바이오의약품을 국가전략기술·시설로 지정해 최대 25%까지 투자세액 공제를 해주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일반 산업의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확대해 달라는 기업의 요구는 외면했다. 일반 산업 기준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0~2%, 중소기업 25%로 차등 적용되는데, 글로벌 기술 경쟁의 첨병 역할을 하는 대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이 부족해 R&D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해외 진출 기업의 유턴 지원도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정도로 0%대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커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긴 역부족이다.
전 세계 국가들 사이에 무역장벽이 높아지는 탈세계화 시대에는 더욱 과감한 기업 지원이 필요하다. 전기차 등 친환경 산업을 지원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MA)은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올해 40조원 규모의 세수 펑크와 불 보듯 뻔한 야당 반대를 감안하더라도 기업의 성장 발목을 잡는 징벌적 세제를 혁파하고 투자를 지원해 민간 중심의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거대 야당도 ‘부자 감세’ 등 낡은 정치 프레임으로 세제 혁신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