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달 만에 외교·경제라인 교체…習 리더십 균열

입력 2023-07-26 18:09
수정 2023-08-25 00:0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친강 외교부 장관과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이강 인민은행장을 동시에 교체했다. 세 번째 국가주석 임기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외교·통화정책 핵심 라인을 물갈이한 건 사실상 인사 실패를 자인한 것으로 시 주석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7개월 만에 사라진 ‘늑대 외교’의 상징
지난 25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상무위원회를 열고 한 달 넘게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친 장관을 전격 해임하고 그 빈자리를 친강 이전에 외교부 장관을 지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메꿨다.

공세적 외교를 지향하는 ‘전랑(늑대전사) 외교’의 상징으로 꼽힌 친 장관이 특별한 설명 없이 해임되자 베이징 외교가에선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달 25일 이후 친 장관의 부재가 길어지자 건강 이상설, 불륜설, 노선투쟁설, 간첩설 등이 불거졌다. 중국 정부는 친 장관의 해임 이유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불륜설이다. 홍콩 피닉스TV 앵커 푸샤오톈이 친강의 혼외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푸샤오톈이 작년 3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친강 당시 주미 대사와의 인터뷰 사진과 자신의 아들 사진을 함께 올리면서 불륜설이 불거졌다.

일부 중화권 매체는 친강이 간첩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당내 친러파가 친강이 실제로는 친미파라고 고발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군 기밀 유출설’도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발간한 ‘중국 로켓군 부대 관련 보고서’에 미사일 부대 위치 등 주요 정보가 고스란히 담겼는데, 이 문제에 친강이 연루됐다는 의혹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왕 위원의 외교부 장관 재기용이 친 장관의 갑작스러운 퇴임만큼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한다. 왕이는 중국 공산당 권력의 핵심인 중앙정치국 위원 24명 중 한 명이고, 친강은 204명으로 구성된 공산당 중앙위원 중 한 명이다. 중앙위원급이 가는 장관 자리에 정치국 위원을 앉힌 건 이례적인 인사라는 평가다.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친강의 후임으로 왕이를 재발탁한 것에 대해 “당 규약과 선례를 벗어나는 일”이라며 “이는 그만큼 시 주석이 당 지도부 장악을 놓고 큰 정치적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시험대 오른 시진핑 리더십
지난 3월 유임된 이강 인민은행장을 판궁성 부행장으로 교체한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 행장은 류허 전 경제담당 부총리와 함께 미·중 무역전쟁을 이끈 인물이다. 특히 금융 부문에서 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팬데믹 종료 선언 이후에도 내수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문책성 인사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친 장관 해임과 동시에 이번 인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중국 지도부 단속 강화의 연장선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한 이 행장의 배경이 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이강이 갖고 있는 미국 영주권이 문제가 됐을 수도 있다”며 “그만큼 지도부 내부의 사상 검증이 강화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를 종합할 때 시 주석이 중국 지도부의 기강을 다잡기 위해 통화·외교정책 담당 수장을 모두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군부를 향해 강한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지난 20~21일 베이징 회의에 군간부를 소집해 “군 지휘부 내 당 규율을 확립하는 것이 군의 100년 목표를 실현하는 데 필수”라고 지적했다. “당에 대한 절대적 충성의 핵심은 ‘절대적’이라는 단어에 있다”고도 언급했다. 한 중국 전문가는 “러시아에서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 시도가 있자 시 주석이 위협을 느낀 것 같다”며 “사실상 인사 실패를 자인하면서까지 외교·경제 핵심 라인을 모두 교체한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