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도시 인프라는 60~80년 전의 기온에 맞춰 설계됐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후에는 더이상 맞지 않게 됐습니다."
영국 비영리단체 '회복이 먼저'(Resilience First)의 엔지니어링 전문가 조지 카라기아니스는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폭염이 지속되는 데 따른 빌딩, 도로·교량, 송전 시설 등 인프라의 손상과 이로 인한 재해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미국과 영국 등의 도로 아스팔트가 폭염으로 인해 파열되거나 빌딩의 합성수지 마감재, 철근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물 등에 이상이 발견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달들어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 유타주 루이지에나주 위스콘신주 텍사스주 등에선 도로 파손으로 인한 신고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남부 인터스테이트10 고속도로의 휴스턴 남부 구간의 6차선 도로가 38도 가량의 기온이 지속된 탓에 파열되는 사고가 났다. 미국 도로의 90%를 차지하는 아스팔트 포장 도로는 곳곳에 웅덩이가 파이거나 돌출되는 등 변형·파손이 잇따르고 있다. 콘크리트 포장 도로의 경우에도 균열을 방지하기 위해 표면이 팽창하도록 설계된 부분의 강철 이음새가 도로가 너무 뜨거워지면서 파손되기도 한다. 이 같은 도로 변형은 차량 수명을 단축하고 유지관리 비용을 증가시키는 등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건물의 경우 폭염이 지속되면 파이프 및 전기 구조물이 변형되거나 노후화돼 막대한 수리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합성수지 파이프 접착제와 구조 결합부는 특히 열에 취약하다. 도심의 온도가 48도까지 치솟기도 하는데 햇볕을 직접 받는 빌딩 외부는 82도까지 온도가 치솟는다. 마감재가 변형될 경우엔 물이 새기도 한다.
공사중인 건물도 폭염의 영향을 받는다. 43도 이상의 기온이 3주 이상 지속되는 피닉스의 공사현장에선 건축에 쓰이는 강판과 철제 대들보 뼈대가 팽창해 공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 기온이 30~32도로 낮아지는 밤에 공사를 하거나 콘크리트에 얼음물을 붓기도 한다. 레이문도 에르난데스 애리조나·뉴멕시코 건설 노동조합 현장대표는 "지금 너무 더워서 빔이 더 부풀어 오른 탓에 이상태로 콘크리트에 빔을 세팅하면 벽에 균열이 생긴다"고 전했다. 철재로 건설하는 교량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피닉스의 건설사 윌멩의 위험 관리자 매트 길릴랜드는 "날씨에 따라 재료가 몇 인치씩 늘고 줄어서 아침에 설치한 게 오후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흔하다"고 전했다. 송전 시설도 불안하다. 2021년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발생한 폭염으로 400개 이상의 변압기가 고장나기도 했다.
건축가들은 도시의 유리와 강철로 된 고층 빌딩의 냉각 시스템과 외관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리로 둘러싸인 외벽이 햇볕을 반사하고 에어컨이 뜨거운 공기를 도시로 내뿜는 탓에 도시의 열섬 현상이 심해진다는 지적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따르면 도심 구조물과 도로가 태양열을 머금었다 내뿜는 열섬현상으로 도시의 온도는 3~4도가량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과 유럽 전역에서 극심한 더위가 증가하면서 2100년까지 도로와 철도 시스템의 연간 운영 및 유지보수 비용이 최대 54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