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제6장의2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라는 표제 하에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와 이에 대한 사용자의 의무가 도입된 지 만 4년이 지났다. 비록 부작용이 없지는 않겠으나,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는 직장 내에서 발생하던 '갑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예방하고 직장 문화를 개선하는 데 일조하여 왔다고 보여진다.
우선 근로기준법 규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하려면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행위일 것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2). 또한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알게 된 사용자는 지체없이 사실 확인을 위한 객관적 조사를 실시하여야 하며, 피해 근로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 조치를 취하고,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확인되면 피해근로자 보호조치와 행위자에 대해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동법 제76조의3).
그런데 이러한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조사, 보호조치, 징계 등을 통한 구제 이외에, 피해자 입장에서 회사가 자신의 피해에 대해 적절하고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느끼고 이로 인한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기를 원하거나, 병원 치료비 등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입은 손해가 있어 배상받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특히 직접 가해행위를 한 직원 뿐 아니라, 사용자 즉 회사로부터 손해배상도 받기를 원하는 경우 이것이 인정될 수 있을까?
이러한 경우에 피해자는 법원에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민법 제750조에 근거하여 손해배상 청구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례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비교적 최근이라서 아직까지 대법원 판례는 없는 것으로 보이나, 하급심 법원에서는 차츰 이러한 판례들이 나오고 있어 살펴본다. ◆'직장 내 괴롭힘' 사용자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대표적인 판례들을 살펴보면, 수원지법 안산지원 2021. 1. 29. 선고 2020가단68472 판결은 회사의 이사가 직장 내에서 빈번한 폭언과 욕설을 하여, 근로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고, 해당 근로자는 이에 대해 상시적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호소하였으며, 회사의 대표이사 역시 해당 이사가 근로자들에게 욕설을 잘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던 사안에서, “회사는 근로자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고 있다.
(1)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한 보수 지급의무 외에도 근로자의 인격을 존중·보호하며 근로자가 근로제공 의무를 이행할 때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고 근로자의 생명·건강 등에 관한 보호시설을 하는 등 쾌적한 근로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근로자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 그리고 사용자가 이러한 보호의무를 위반하여 근로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이는 사용자가 직접 직장 내 괴롭힘을 한 경우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을 예견·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방지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2) 그런데, 사용자에게 보호의무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해사실이 근로자의 업무와 관련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통상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예측되거나 예측할 수 있는 경우이어야 하고, 이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사용자의 보호의무위반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3) 그런데 해당 사안에서 회사의 임원은 직장 내에서 빈번한 폭언과 욕설을 해왔고, 원고는 동료들에게 상시적으로 그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였으며, 피고의 대표이사 역시 해당 임원이 근로자들에게 욕설을 잘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주의를 준 점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언행의 내용, 지속 기간, 피해자의 반응과 고통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이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고, 회사가 이를 충분히 예견·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였다. ◆'직장 내 괴롭힘' 손해배상 청구가 부인된 사례한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6. 1. 선고 2019나24567 판결에서는 밤 9시 경 근로자들끼리 다음 달 근무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가해자가 끼어들었다가 참견하지 말라는 말을 듣자 피해자에게 욕설과 협박을 가하였고, 이후 가해자가 밤 11시 경 퇴근해 귀가하는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수차례 협박, 폭언, 욕설을 한 사안에서 사용자인 회사 손해배상 책임 성립을 부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고 있다.
(1) 사용자가 직장 내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상황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에 따른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문제된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려면 사용자의 관리 영역 안에서 발생해야 한다. 즉 문제된 행위가 사용자의 제재나 조치가 가능한 업무관련성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
(2) 그런데, 이 사건 모욕행위는 단순히 사적인 관계에서 발생한 것에 불과하여 회사의 본래의 업무나 그것에 통상 수반되는 업무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업무와 무관하게 직장 내 인간관계의 갈등상황에서 비롯된 행위로 보이는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 회사가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를 위반한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또한 해당 사건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접적 손해배상 뿐 아니라, 민법 제 756조에 규정된 사용자 책임에 기반한 회사의 책임도 부정하였는데, 가해자의 모욕 등의 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회사의 사무집행과 관련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이다.
민법 제756조 제1항은 “타인을 사용하여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는 피용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피용자의 선임 및 그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한 때 또는 상당한 주의를 하여도 손해가 있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 '사무집행에 관하여'라는 뜻은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업 활동 내지 사무집행행위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일 때에는 이를 사무집행에 관하여 한 행위로 본다는 의미다. ◆사용자가 괴롭힘 직접 행위자인 경우사용자(회사)의 임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이고 회사가 이를 예방하지 못한 경우가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직장 내 괴롭힘의 당사자인 경우라면 물론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 위반으로 사용자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할 것이다.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한 임금 지급의무 외에도 근로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근로자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하고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였다면 근로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는 바, 이는 직장 내 괴롭힘을 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회사는 근로기준법 상 사용자에 해당하는 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한 경우는 물론, 일반 직원이 괴롭힘 행위의 가해자인 경우에도,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의 공동 책임자가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이러한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다면, 결과적으로 인정되는 손해배상의 액수가 크지 않더라도 회사의 조직 관리 측면에서 많은 부담을 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없이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직장 내 괴롭힘 해당 여부를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판단하며, 충분한 보호조치와 징계 조치를 하는 등 법에서 정한 사후 조치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지침의 마련 및 교육,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는 신고 채널의 운영 및 접수된 신고에 대한 상담제공 등 충분한 절차를 사전에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김은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