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중복을 맞아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나온 50대 주부 임모 씨는 채소 매대 앞을 한참 서성였다. 지난주보다 농산물 가격이 눈에 띄게 올라 고민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임 씨는 “삼계탕과 곁들일 오이김치를 담가볼까 했는데 오이, 부추 등 재료비가 너무 부담된다”며 “배추 겉절이와 오이김치 사이에서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부지방에 내린 ‘극한 호우’ 후폭풍이 식탁 물가에 거세게 불고 있다. 여의도의 107배 면적에 해당하는 농경지가 초토화되자 전국 시장에 공급되는 농산물 물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다시 한 번 비소식이 예고된 만큼 임 씨와 같은 소비자들은 “농산물 가격이 더 오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KAPI 일주일 사이에 30% 급등이날 방문한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백오이(5개입)은 한 달 전(4980원)보다 40.2% 급등한 698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백숙용 닭(500g·2개입)은 16.0% 오른 1만1580원이었다. 작년부터 계속된 물가 상승세에 이번 호우까지 겹치며 농축산물 가격이 튀어오른 것이다.
팜에어·한경 농산물가격지수(KAPI)를 산출하는 예측 시스템 테란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13~20일) 간 KAPI는 31.3% 급등해 162.59포인트로 마감했다. 테란에서 집계하는 22개 작물 중 15개 작물이 지난주보다 가격이 올랐다. 국내산 오이는 79.2% 급등한 ㎏당 2610원에, 깻잎은 74.2% 오른 8389원에 거래되며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뛴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상승폭은 더 크다. 상추(233.1%), 애호박(101.7%), 부추(77.3%) 등 여린 채소들의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추석까지 가격 오르나공급 감소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이같은 흐름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중부지방에는 주요 채소 산지가 몰려있어 호우의 여파가 더 컸다. 노지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침수 피해를 입었고 계속된 장마에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생육기 충분한 햇빛을 쬐어야 하는 오이는 생육 부진으로 전년 동월 대비 출하량이 40% 가량 줄어들었다. 강원도 홍천처럼 노지 재배를 주로하는 지역에서는 밭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애호박도 마찬가지다. 한 대형마트 채소 담당 바이어는 “물량의 30~40%는 품질 저하로 시장에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며 “만약 날씨가 계속 좋지 않을 경우 추석까지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파의 경우 경기도, 충청도 지역에서 수확 작업이 밀린 상태다. 다음달 강원도에서 대파가 출하되기 전까지는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닭고기 가격에도 영향여름철은 삼복(초복·중복·말복)과 휴가철 성수기로 닭의 수요가 가장 많은 시기다. 그와중에 집중 호우로 닭이 폐사하면서 닭고기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집계한 ‘7월 10~19일 호우로 인한 농업 분야 피해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폐사한 79만7000마리의 가축 중 닭이 92.7%를 차지했고 그 중 대부분이 육계(고기용 닭)였다.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양계 농가가 몰려있고, 닭은 몸집이 크지 않아 물에 쉽게 떠내려갔다는 설명이다. 한 육가공업체 관계자는 “날이 더워질수록 양계장 온도 유지를 위한 에너지 비용이 늘어 닭고기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폐사량이 1% 미만으로 수급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밝혔지만, 이미 조류인플루엔자(AI)와 사료 가격 상승 등으로 닭고기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닭고기 1㎏ 소매 가격은 1년 전보다 11.5% 올랐다.
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