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檢 천경자 미인도 수사, 위법하지 않아"…유족 1심 패소

입력 2023-07-21 13:45
수정 2024-10-05 21:43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고(故) 천경자 화백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유족 측은 "검찰이 부실한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1일 서울중앙지법 제214민사단독 최형준 판사는 고(故)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 몽고메리대 교수가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는 1991년 천 화백이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밝힌 이후 여러 차례 위작 논란이 일었다. 천 화백이 작고한 다음 해인 2016년 김 교수는 "위작인 미인도를 진품이라 주장한다"며 바르토메우 마리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사자명예훼손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김 교수 측은 프랑스 뤼미에르 연구팀에 작품 감정을 의뢰해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은 0.00002%"라는 감정을 받아냈다.

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배용원 부장검사)는 같은 해 12월 이들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한편 "미인도는 진품"이라 결론 내렸다. 당시 검찰은 △9명의 감정위원이 진품이라 본 점 △위작 주장자의 제작 방식과 다른 점 △뤼미에르 팀의 계산식이 천 화백의 다른 작품에도 진품 확률을 4%로 판정한 점 등을 들었다.

유족 측은 "검찰의 부실 수사로 천 화백과 유족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201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이 위작 의견을 낸 감정위원에게 여러 번 연락해 회유하는 등 감정 절차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허위 사실이 유포됐다고도 지적했다.

법원은 검찰이 부당하게 감정 절차에 개입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최 판사는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감정위원이 담당 검사로부터 '이 작품 진품이라고 보면 어때요'라는 통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면서도 "수사 후 6년이 지난 상태에서 당시 인상이나 느낌을 토대로 한 진술"이라 봤다.

최 판사는 설령 위작일 가능성이 있더라도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면 검찰이 이를 배제했다고 해서 부당한 수사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 감정 결과를 고려해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일 뿐 표현 자체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를 대리한 이호영 변호사는 선고 직후 "판결문을 받는 대로 유족과 상의해 항소 여부 및 수사 기록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입장문을 내고 "재판부가 제 고발을 외면했다고 해서 진실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식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므로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