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시간 세뇌교육…월북 미군들이 경험한 '생지옥'

입력 2023-07-20 10:57
수정 2023-07-20 11:22

징계를 앞둔 23살 미군 병사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견학 중 월북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과거 비슷한 선택을 했던 다른 이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통신 시도에 북한이 이틀째 응답하지 않으면서 이 병사가 어떤 처우를 받을지와 관련한 궁금증이 커진 결과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NK뉴스는 미군 병사가 자의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서 "이전까지 5건, 어쩌면 6건의 미군 월북 사례가 있다"고 19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알려진 첫 사례는 1962년 5월 월북한 래리 앱셔 일병이다. 같은해 8월 역시 월북한 제임스 드레스녹 일병은 앱셔가 "한국에서 대마초 관련 문제가 있었고, 군법회의에 회부돼 군에서 쫓겨날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드레스녹 자신도 상관의 서명을 흉내 내 외출증을 위조했다가 처벌받게 되자 월북을 선택했다.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주한미군에 배속된 이래 실의에 빠져 홍등가를 전전했다고 털어놨다. 3년 뒤에는 제리 패리시 상병과 찰스 젠킨스 병장이 월북해 이들과 합류했다. 패리시는 개인적 이유로, 젠킨스는 베트남 전쟁에 차출될 것이 두려워 월북했다고 한다.

북한은 미군 병사들이 서방의 자본주의적 삶을 버리고 사회주의 낙원을 택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북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1966년 주북한 소련 대사관을 통해 망명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했고, 결코 북한을 떠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들은 이후 북한 선전영화에서 악역 배우를 맡아 전국적 인지도를 지닌 스타가 됐고, 북한 내 외국어 교육기관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NK뉴스는 전했다.

그러나 이 매체는 "미국인들은 (북한에서의) 첫 몇 년의 상당 부분을 자아비판으로 보냈으며, 하루 10시간 넘게 김일성의 지독하게도 지루한 가르침(주체사상)을 강제로 배워야 했다"고 덧붙였다.


2004년 월북한 미군 병사 중 유일하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젠킨스는 북한 당국이 자신들에게 감시역을 겸한 '여성 요리사'를 배정하고 성관계를 강요했으며 자신이 이를 거부하자 드레스녹을 시켜 수차례 폭력을 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젠킨스는 "그들은 보상과 특혜를 약속하며 규칙을 어긴 사실을 서로 고발하게 했다. 이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건 업무량 감소, 더 나은 배급, 추가 외출 등이었다"고 말했다.

이들 여성 요리사는 불임을 이유로 전 남편과 이혼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78년 앱셔의 요리사가 임신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북한 당국은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서 납치한 여성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젠킨스의 부인인 소가 히토미도 1978년 일본에서 납치된 여성이다. 젠킨스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은 히토미는 2002년 다른 납북 일본인 4명과 함께 귀국했고, 젠킨스도 2년 뒤 풀려날 수 있었다.

앱셔와 패리시는 1983년과 1998년 병사했고, 드레스녹도 북한에서 201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정착한 젠킨스는 2017년 노환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매체는 지난 18일 군사분계선을 넘은 미군 이등병 트래비스 킹 역시 미국 귀국 후 징계를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과거 월북한 미군 병사들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2022년 발생한 탈북자 월북 사건을 크게 선전하지 않았던 것에서 드러나듯 북한의 선전전 전략에 그간 큰 변화가 있었고 비용·관리 문제도 있다면서 "북한이 킹을 영원히 자국에 두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