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적자기업이 누군가에게 전환사채(CB)를 발행한다. 이 기업의 주가는 계속 내리막을 걷고 전환사채의 주식 전환가격도 내려간다. 하지만 1년 후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교환되는 시점 우연히(?) 큰 호재가 생겨난다. 주가는 폭등하고 전환사채를 받은 익명인은 높은 값에 주식을 던진다. 이후 매물이 쏟아지며 주가는 다시 폭락한다.
전환사채를 이용한 전형적인 불공정 거래 사례다. 전환사채는 일정 기간 후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채권이다. CB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 다수가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관찰되자 금융당국이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올해 초 일부 규정을 신설했지만 추가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0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열린 '전환사채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방안' 간담회에서 "올해 초 전환사채 관련 규제 도입 후에도 아직도 불공정한 행위가 지속되고 있다"며 "공시 의무를 강화해 전환사채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전환사채가 무분별하게 발행?유통돼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학계와 업계에서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과도한 '리픽싱' 문제에 대해선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전환사채는 주가가 내려가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가액도 내려간다. 하지만 이러한 리픽싱 옵션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내린 뒤 주식으로 바꾸고 다시 거짓 호재를 띄워 차익을 거두는 방식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있다. 지나치게 낮은 전환가액으로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희석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도 리픽싱은 최초 전환가액의 70%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정관규정에 따라 하향조정이 가능해 불공정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며 "전환가액을 70% 미만으로 리픽싱하려면 주총 특별 결의를 얻게 하는 등의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도 "미국에서도 리픽싱 문제가 불공정 거래를 지속적으로 일으키자 제도 자체가 사라졌다"며 "리픽싱을 인정하는 나라는 CB시장이 사실상 죽어버린 일본과 한국 두나라뿐"이라고 지적했다.
사모방식으로 제3자에게 콜옵션을 부여하는 것 역시 학계와 업계에서 가장 먼저 문제점으로 꼽는 방식이다. 전환사채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은 자유롭게 양도와 매매가 가능한데, 최대주주 및 이해관계자의 이익 편취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빗썸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원영식 전 초록뱀그룹 회장도 전환사채의 콜옵션을 차명으로 행사해 수백억원의 매매차익을 얻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기소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선 콜옵션의 무상양도,매매 자체를 제한하는 방법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전환사채 발행한도를 일정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식도 검토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제3자 배정 CB 발행한도를 자본총계의 20% 이내로 제한하거나 전체 CB 발행한도를 자본총계의 100% 이내로 제한하는 식이다. 전환사채 발행의 투명성을 강화하기위해 기존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관련정보를 주요사항보고서 등을 통해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 역시 논의되고 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시장 불투명성이 이어지면 결국 시장 자체가 죽게 된다"며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논의되는 여러 사항에 대해 규제 성과를 거두면서도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