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진 前 삼성전자 사장 "평사원에서 사장 된 비밀…퇴근 전 10분에 있죠"

입력 2023-07-19 18:51
수정 2023-07-20 00:41
인터뷰 약속은 19일 오전 10시였지만 고동진 삼성전자 고문(전 무선사업부 사장·사진)은 약속 장소인 서울 신사동 민음사 본사까지 20분이나 빨리 왔다. 인터뷰 전 50분간 실내자전거를 타며 아침운동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의 등장은 신간 <일이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고 고문은 1984년 삼성전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 자리까지 오른 ‘직장인의 롤모델’이다.

출간 1주일 만에 1만 부 이상 팔려나간 책은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라’ ‘건강에 투자하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고 고문이 후배 직장인들의 멘토를 자처한 것이다. 책은 삼성전자 후배 직원들이 그에게 한 질문 33개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일확천금이 아니라 일터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성실한 후배들을 위해 내가 쌓은 노하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고 고문은 입사 초부터 사장이 목표였다. 그는 중학교 때 꿈이 ‘점심 때 언제든 불고기 백반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을 만큼 어렵게 컸다. 그의 인생은 절박했고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었다. “당시 버스 막차가 밤 10시15분이었어요. 야근 후 막차 타고 집에 가면 손만 씻고 책상 앞에 앉아 외국어 공부를 했어요.”

매일 퇴근 전에 ‘내일 할 일 목록(to do list)’을 적고 하루 뒤 달성률을 확인했다. 연말이 돌아오면 사업 보고서 쓰듯 직장 생활의 목표를 적고 스스로 성적을 매겼다. 그는 “목표는 ‘석 달 안에 일본어 자격증 2급을 딴다’처럼 구체적이고 정량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는 시대. 일터에서 성공하라는 그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할까. 고 고문은 “모든 사람에게 저처럼 살라고 하는 게 아니다”며 “다만 제게 워라밸은 목표 달성을 위해 일과 삶을 모두 투여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결국 워라밸의 균형점도 남이 아니라 내가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독서를 강조한다. 고 고문은 “어느 정도 연차가 되면 업무에 상상력이 요구된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그에 대비하는 게 필요한데, 그때 역사서가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일생일대의 위기였던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 때도 그는 ‘최악 중 최악’을 상상했다. 출시 후 배터리 폭발이 줄을 잇자 전 제품 리콜과 보상, 단종을 결단했다. 고 고문은 “당시 배터리 교체 후 또다시 폭발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끝없이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봤다”고 말했다. 평소에 현장을 자주 찾아 ‘위기 극복의 단서’를 모아두는 건 기본이다. 그는 “제 아무리 천재라도 책상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잘라 말했다. 고 고문은 “2006년 쓰러져 왼쪽 귀의 청력을 잃은 뒤로는 휴식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한다”며 “매달 월급의 10%는 몸과 마음의 건강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이번 책에 담긴 문장들은 각각 1992년생, 1998년생인 두 자녀를 위한 조언이기도 하다. 고 고문은 “큰아들이 어렸을 때는 ‘아빠 말 들으면 (답답해서) 온몸에 석고를 바른 기분이 든다’고 하더니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이제 아빠의 말들이 이해가 된다’고 한다”며 웃었다. 그는 후속편으로 ‘관리자, 임원들을 위한 조언서’도 집필할 계획이다.

구은서 기자/사진=강은구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