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와 포장을 뜯지 않고 그대로 되파는 명품 리셀(되팔기) 시장은 2020~2022년 대호황을 누렸다. 수백만원의 웃돈이 붙어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
하이엔드 명품의 대명사인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이 일반 매장에서 구매한 이력이 없는 소비자에게 물건을 내어주지 않는 판매 행태를 고수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명품에 갓 입문한 젊은 세대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정품 구입보다 리셀 거래가 더 익숙하다”는 게 유통업계 얘기다.
올해 들어서는 사정이 바뀌었다. 경기 둔화로 젊은 ‘명품족’이 리셀 시장을 속속 이탈하는 추세다. 17일 리셀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명품족 사이에 ‘샤넬 클미’(클래식 미디움의 약자)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샤넬 클래식 미디움 플랩백’(실버 로고)은 정가보다 싼값에 거래되고 있다.
정가 1450만원인 이 가방의 최근 리셀 시세는 1200만~1300만원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백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도 불티나게 팔리던 제품이다.
상반기 거래 건수는 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46건)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디올의 인기 제품 ‘레이디백 미디움’은 지난달 말 700만원에 거래됐다. 이달 초 가격이 인상되기 전 정가(810만원)보다 13.5% 싼값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완전히 식은 건 아니다. “실속 소비가 대세가 되는 추세”라는 게 명품업계 시각이다. ‘탈(脫)리셀’ 흐름이 가속하는 가운데 중고 시장은 고속성장 궤도에 올랐다.
중고명품 플랫폼 구구스의 지난 2분기 거래액(구매 확정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22% 늘어난 557억원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명품 거래 플랫폼 트렌비의 중고명품 매출 비중도 1년 새 두 배 늘었다. 지난해 6월 전체 매출에서 중고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불과했지만, 올해 6월에는 22%로 불어났다.
경기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부자들은 일반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스텔스 럭셔리’ 브랜드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스텔스 럭셔리는 상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한눈에 어느 브랜드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초고가 명품을 말한다.
델보, 로로피아나, 발렉스트라, 벨루티 등이 대표적인 스텔스 럭셔리 브랜드로 꼽힌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샤넬 클미가 ‘결혼식 5초 백’(결혼식장에 가면 5초에 한 번 보이는 가방)이 됐을 정도로 명품이 대중화해 고액 자산가들은 ‘아는 사람만 아는 명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