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돈을 포기할 수 있으면 멋지게 살 수 있다’는 소설 구절이 있어요. 방글라데시에서 환자를 돌본 삶은 의사로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개발도상국 봉사를 희생으로 표현하지만 저에겐 행복이었죠.”
올해 JW성천상 수상자로 뽑힌 김동연 씨(글로벌케어내과 전문의·49·오른쪽)는 17일 “상금을 방글라데시 램병원에 기부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JW그룹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생명 존중’ 뜻을 전하기 위해 수여하는 이 상의 상금은 1억원이다. 11회를 맞은 올해 김씨는 동갑내기 부인 안미홍 씨(누가광명의원 전문의·왼쪽)와 첫 부부 수상자로 선정됐다.
연세대 원주의대와 연세대 의대를 각각 졸업한 김씨와 안씨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와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뒤 2003년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김씨가 군의관 대신 한국국제협력단(KOICA) 파견 의사로 대체복무하면서다.
봉사하는 삶이었지만 방글라데시에 사는 동안 부부는 마음이 늘 불편했다. 가난이 뒤덮은 그곳에서 끼니 걱정을 하지 않는 ‘상대적으로’ 풍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곳을 찾아 현지인을 돕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KOICA 복무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지 2년 만인 2007년 부부는 다시 방글라데시를 찾았다. 수도 다카에서 300㎞ 떨어진 북서부에 있는 램병원이다. 현지에서 만난 영국인 의사 부부의 요청에 응한 것이다. 당시 방글라데시에선 약만 잘 먹으면 생존율이 95%에 이르는 결핵으로 매년 6만~7만 명이 숨졌다. 결핵 사망률 세계 5위였다.
램병원 주변 마을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소똥을 말려 연료로 썼다. 산부인과 소아과 등 기초 진료 환자만 겨우 돌봤다. 김씨는 이 병원에 중증질환 치료 시스템을 구축했다. 심장마비 환자를 위한 혈전용해술을 도입했다. 전기로 돌아가는 인공호흡기가 없어 환자가 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동으로 호흡을 넣는 앰부배깅(수동식 산소 공급) 교육을 했다.
“의료진이 부족해 보호자가 직접 앰부백을 짜도록 했어요. 환자를 포기한 보호자를 달래며 ‘48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협상하는 게 일이었죠. 교육받은 보호자가 3교대로 환자 곁을 지켰는데 나중엔 임종을 앞둔 가족과 함께해 좋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20% 정도는 소생했습니다.”
안씨는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을 도왔다. 청소년 보건사업에 참여하며 임신부·영아 사망률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2018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매년 두 차례 후원금을 모금한다. 김씨는 “램병원은 연간 예산 5억원으로 입원 환자 7000명, 외래 환자 10만 명을 돌본다”며 “한국에서 같은 규모의 환자를 보려면 비용이 100배는 들 것”이라고 했다. 방글라데시 결핵 사망률은 10위권 밖으로 벗어날 정도로 개선됐다. 그는 “이제 필요한 것은 자생력”이라며 “현지인 의사 교육 등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올해 4월 이종호 JW그룹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중외재단은 성천상 이름을 JW성천상으로 바꿨다. 고인이 직접 만든 상의 뜻을 오랜 기간 지키겠다는 취지다. 시상식은 8월 30일 경기 과천 JW과천사옥에서 열린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