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EV 충전 거리, 60㎞와 200㎞의 차이는?

입력 2023-07-17 11:40
-EU, 승용 전기부터 수소까지 충전기 설치 거리 산정

시장 통합을 추구하는 유럽의 'TEN(Trans-European Network)' 계획은 크게 교통(Transportation), 에너지(Energy), 그리고 전자통신(electric)으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교통 네트워크(TEN-T)를 구성하는 핵심 하드웨어는 바로 도로다. 유럽연합 내 주요 도로를 모두 연결하고 이용자들의 불편함을 줄이는 게 핵심이다.

최근 EU가 도로 네트워크에서 가장 신경쓰는 부문은 EV 충전 스테이션이다. 이를 위해 유럽 의회는 구체적인 충전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설정하고 설치 규정을 채택했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2026년까지 EU는 주요 노선(TEN-T)을 관리하는 각 나라별로 매 60㎞마다 충전기를 설치토록 했다. 주요 국가를 연결하는 도로를 중심으로 60㎞마다 EV 충전기를 설치해 전기차 이동의 어려움을 배제한다. 이때 충전 출력은 400㎾를 제공하며 2028년에는 600㎾로 높여 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이기로 했다. EV가 늘어날수록 충전 시간 문제가 대두되는 만큼 충전기 출력 향상으로 시간 단축을 추구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1,000㎾ 이상의 충전 출력을 제공해야 하는 상용차는 어떨까? 유럽연합은 상용차의 경우 60㎞보다 두 배 가량 많은 120㎞를 설정했다. 이때 충전 전력은 1,400㎾~2,800㎾를 제공토록 했다. 동시에 수소는 200㎞마다 스테이션을 설치해야 하며 가격은 ㎾h 또는 ㎏ 단위의 표시를 제안했다. 동시에 충전 때는 결제도 쉽게 가능해야 한다.

이처럼 구체적인 거리 기준을 제시하자 유럽 내에선 다양한 수송 부문의 에너지를 통합적으로 판매하는 복합 스테이션 구축이 활기를 띠고 있다. 기존 주유소 및 LPG 통합 충전소에 EV 및 수소 충전이 가능한 공간이 들어서는 것. 오랜 시간 별도 에너지로 분류해 주유소와 LPG및 CNG 충전을 분리했던 한국과 달리 오히려 '에너지'라는 거대한 분류 체계 내에서 '수송'을 통합하는 것이 이용자 편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결과다.

물론 한국도 복합 스테이션 확대에는 적극적이다. 이를 위한 제도적 개편도 많이 진행됐고 일부 사업자는 통합을 적극 추진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EV 충전이 기존 주유소에 어렵사리 더해지는 것일 뿐 수송 부문이 모두 통합되는 방식은 아니다. 여전히 주유소와 LPG, CNG 충전소가 분리된 상태에서 전기차 및 수소 충전도 각자 방식으로 설치한다. 이용자 편의보다 사업자 중심의 에너지 공급 인프라가 팽배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동 수단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점차 다양하되고 있다. 기름 중심에서 시작돼 LPG, CNG 등으로 확대됐고 이제는 전기와 수소가 진입했다. 따라서 수송 부문에선 점차 사용하기 쉬운 에너지와 사용이 불편한 에너지로 구분되는 추세가 강하다. 여기서 사용하기 쉬운 에너지는 공급이 쉽다는 말과 연결되며 사용하기 불편한 에너지는 친환경적이지 못한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해 숫자가 많아 사용하기 쉬운 기름은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점차 사용이 꺼림칙하다. 반면 전기와 수소는 그나마 친환경이라고 하니 반갑지만 충전기 숫자가 적어 사용이 불편하다. 이때 선택은 여전히 사용하기 쉬운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유럽연합이 복합 스테이션을 늘려가려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머리로는 친환경 이동 에너지를 선택하는 게 맞지만 생존에 최적화 된 인간의 뇌는 환경보다 경제 논리를 따르도록 설계돼 있다. 따라서 복합 스테이션을 늘리면 새로운 에너지 사용의 불편함이 줄고 이때 뇌는 친환경 에너지가 조금 비싸도 경제보다 환경 논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확신한다. 이때 뇌가 판단하는 이익 논리는 굳이 숨겨진(?) 충전기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불안감의 제거가 만들어주는 까닭이다.

관련해 <욕망의 뇌과학> 저자인 미국 신경경제학연구센터 폴 잭 박사의 실험은 흥미롭다. 그는 재미없는 내용과 그렇지 않은 컨텐츠에 각각 짧은 광고를 넣고 시청자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컨텐츠를 보는지 관찰했다. 물론 광고 시청에 따른 비용은 시청자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당연히 재미없는 내용의 컨텐츠는 지속성이 짧았다. 그런데 흥미 여부를 떠나 가장 마지막에 '지금까지 당신은 컨텐츠를 보면서 광고를 시청했고 덕분에 당신은 얼마를 벌었습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이 금액을 기부하시겠습니까?'를 물었다. 그 결과 끝까지 영상을 시청한 그룹은 재미있는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 25%는 기부를 채택했다. 컨텐츠의 재미 여부가 기부 판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이 말을 이동 수단에 적용하면 충전 편의성이 높아질수록 환경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높아져 경제성이 조금 떨어져도 친환경차 선택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기를 충전하고 수소를 넣는 일이 기름보다 다소 비싸도 이용에 불편함만 없다면 친환경이라는 선의가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이어서 한국도 충전 설치 기준을 보다 촘촘히 만들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지금은 신축 아파트 주차 면수 등에 치중할 뿐 도로의 거리는 크게 고려하지 않으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