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2시30분(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호텔에 마련된 윤석열 대통령 순방 동행기자단 프레스센터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이 들어왔다. 몇 시간 후면 윤 대통령과 수행원, 기자단을 태운 대통령 전용기가 한국으로 떠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대통령 순방 기간에 고위 관계자들의 브리핑은 일상적인 일이지만, 이때는 분위기가 달랐다. 관계자들이 들어오자 대통령실 직원이 항상 열려 있던 프레스센터의 문을 닫았다. 한 관계자는 “혹시 한국 기자가 아닌 분이 있으면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관계자는 “모두 노트북과 휴대폰 사용을 멈춰달라”고 했다.
이어 굳은 표정의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가 단상에 올랐다. 그는 “오늘이 순방 마지막 날인데 한 가지 방문 일정이 생겼고, 기자단도 2박을 이곳에서 더 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사실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 일행이 우크라이나로 떠나기 몇 시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사실이 기사화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약 12시간이 지난 한국시간 15일 오전 9시. 대통령실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보도 유예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이처럼 극비리에 이뤄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때 키이우 도착 전까지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모든 이동 과정을 위장하거나 숨겼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3월 비밀리에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대통령실은 5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후 우크라이나 방문이 가능한지 다각도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황이 수시로 바뀌는 까닭에 예단이 어려워 폴란드 공식 방문을 위한 입국 때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방문 인원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등 극소수 인원으로 꾸려졌다. 격추 우려 등을 감안해 비행기를 타고 키이우로 직행하지도 못했다. 바르샤바에서 키이우까지 이동하는 데 항공기와 차량, 열차 등을 모두 이용해야 했다. 바르샤바에서 키이우까지 가는 데 14시간이 걸렸고, 돌아오는 데 13시간이 소요됐다. 키이우 체류시간은 11시간에 불과했다.
바르샤바=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