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박서준도 푹 빠졌다…세계가 인정한 '이 남자' [하수정의 티타임]

입력 2023-07-16 15:47
수정 2023-07-16 16:00

'패션계의 전설' 칼 라거펠트가 사랑한 브랜드, 꿈의 무대 '피티워모'의 첫 한국인 게스트 디자이너, 르 피가로가 극찬한 클래식의 개혁가...

국내 톱 디자이너 정욱준 '준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정 디자이너가 그의 이름을 딴 패션브랜드 준지로 2013년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2024년 봄여름 컬렉션'을 마치고 최근 귀국한 그를 16일 서울 강남구 준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계가 인정한 톱 디자이너의 비결"이제는 세계 패션계에서 준지가 어떤 브랜드인지 다 알게 됐죠. 그러다보니 매 컬렉션마다 더 개성있고 더 환상적인 패션을 선보이는 것이 과제입니다. "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며 다음 컬렉션을 창작한다고 했다. "이것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은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자격이 있는 국내 브랜드는 준지와 '우영미 파리' 딱 두개다. 파리컬렉션을 주관하는 단체인 파리의상조합은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디올 등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이 속해있다. 정회원이 되려면 기존 회원 중 두개 이상의 패션브랜드로부터 추천을 받고 까다로운 패션계 검증을 거쳐야 한다.

정 디자이너는 한국 패션계에 의미있는 행적을 그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첫 파리패션위크에 등장하자마자 르 피가로로부터 '주목받는 디자이너'에 뽑혔다. 아시아에서 온 새내기 디자이너가 불멸의 클래식 패션으로 꼽히는 트렌치코트를 해체해 소매를 뜯어내거나 스커트로 재탄생시킨 것에 현지 패션계는 환호했다.

세계 최대 남성패션 축제 '피티워모'에 준지가 2016년 초청받은 것도 국내에선 첫 사례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이 무대는 톰 브라운, 겐조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거쳐갔다. 정 디자이너는 "시작부터 세계무대로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소회했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를 지낸 칼 라거펠트는 2009년 펜디 컬렉션 피날레에 준지를 입고 등장하며 당시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칼 라거펠트의 스텝이 이탈리아의 유명 편집숍에서 준지의 옷을 싹쓸이한 이야기는 아직도 패션업계에서 회자된다.

국내외 셀럽들이 준지에 열광하는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카녜이 웨스트, 리아나, 노아 사이러스 등 유명 가수들은 준지의 팬을 공개적으로 자처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와 이동욱이 준지의 코트를 입었던 것이나 '이태원 클라쓰'의 박서준 단골 의상이 준지 브랜드 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 디자이너는 "스키니가 유행하던 시절부터 오버사이즈 패션을 내놨고, 진 의류가 묻혀 있을때 진 소재로 컬렉션을 선보였다"며 "3년, 5년 후 유행이 될 패션이 어떤 것일지 구상한다"고 전했다. ○예술과 상업, 두마리 토끼 잡아
패션업계가 준지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기업과 손잡은 이후에도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인정받는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 디자이너는 초창기 삼성패션디자이너펀드의 지원으로 컬렉션을 준비하며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2012년 이서현 삼성복지재단이사장(당시 제일모직 부사장)이 손을 내밀어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합류했다.

그는 "삼성물산과 손 잡은 후 전문가 집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처음에는 대기업과 손 잡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창작자로써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디자이너는 "패션은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술도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며 "컬렉션의 디자인이 나오는 순간 상업적으로 어떻게 변주할수 있는지 고민한다"고 했다.

그는 매주 준지의 매출 동향을 보고받는다. 지난해 전년비 40% 이상의 매출 증가를 이뤘고, 올 상반기에는 30% 성장을 달성했다. 2020년 출시한 여성복 라인에선 지난해 2.5배 이상의 매출 증가가 있었다.

1967년생인 그는 서울 남대문에서 아동복을 팔던 부모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옷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그의 꿈은 한국에서도 전통있는 럭셔리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조명, 인테리어, 뷰티까지 영역을 넓히겠다는 목표다.

정 디자이너는 "에르메스처럼 역사를 가진 럭셔리 하우스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며 "100년 이상의 전통을 이어가는 패션 하우스를 위해 내가 기반을 닦고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