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세상에 나온 ‘부캐(부캐릭터)’란 신조어는 이제 초등학생도 다 아는 용어가 됐다. 또 다른 자아, 낯선 나의 모습을 찾으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누구나 다 부캐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본업을 잘 챙기면서 부업에서도 성과를 내는 게 쉬울 리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오은철(29)은 별종이다. ‘본캐(본캐릭터)’인 피아니스트뿐 아니라 부캐인 퍼포머와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날려서다. 그런 그가 본캐인 피아노로 관객과 만난다. 최근 자신이 만든 12개의 피아노곡으로 구성된 첫 정규 음반 ‘모먼츠’를 발매하면서다. 16일에는 서울 금호아트홀연세에서 기념 리사이틀도 연다.
최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프로듀서 경험을 활용해 여러 장르를 결합하고 화려한 편성으로 곡을 만들 생각도 했지만 결국 내가 가장 잘하는 피아노로 나의 얘기를 그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피아노는 오은철을 음악과 처음으로 연결해준 악기다. 그래서 피아노 앞에 설 때 자신의 본모습이 나온다. 초등학생 때 중국으로 건너가 국제학교에 다닐 때 외로움에 힘겨워했다. 영어도 중국어도 할 줄 모르던 어린 오은철에게 피아노는 언어를 뛰어넘어 친구와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였다.
“친구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 교실에서 폴 드 세느비유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쳤는데 애들이 제게 관심을 갖고 다가오더라고요. 한국 피아노 학원에서 대충 배운 곡이었는데….”
피아노 전공을 결심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선화예중에 편입해 작곡을 배웠다. 연세대를 거쳐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음대 작곡과에 진학했지만, 그의 머릿속엔 클래식이 아니라 대중문화가 더 깊게 자리잡았다. 그는 “학구적인 클래식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은철은 변신에 나섰다. 크로스오버, 탱고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협업했다. 그러다 팬텀싱어1의 우승자 ‘포르테 디 콰트로’의 예술감독을 맡았고 JTBC ‘슈퍼밴드2’에서 록밴드 ‘크랙실버’의 키보드를 맡아 우승도 했다. 젊은 클래식 아티스트로 구성된 ‘클럽M’에서 편곡 작업을 맡는가 하면, 영화 OST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그는 장르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을 체득했다. 그의 이런 유연함이 작곡과 편곡 작업에도 시너지 효과를 냈다.
오은철은 “클래식과 록음악, 탱고 등 여러 음악 재료를 활용해 어떻게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대중형 아티스트인 그는 자신의 곡을 무대에 올리며 피아노와 지휘를 동시에 하는 게 꿈이다. 오은철은 “이번 음반 작업을 하며 작곡한 곡 중 수록되지 않은 곡이 있다”며 “대규모 피아노협주곡인데, 올림픽 개막식 같은 큰 무대에서 선보이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또 다른 꿈이 있다고 했다. “‘오은철’이라는 장르를 만드는 거예요. 누가 들어도 ‘오은철 음악이네’라고 느낄 수 있는 저만의 스타일요. 이번 음반이 그 여정의 첫걸음입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