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관동대지진 때 우리의 괴물 같은 아버지들, 할아버지들은 조선인을 희생 제물로 바쳤었지? 그건 다른 누구보다 조선인이 약했기 때문이야. 이번 대지진이 일어나면 혐오의 대상이 될 약한 인간이란 바로 우리들이야.”
최근 국내에 처음 출간된 오에 겐자부로의 장편소설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에 나오는 구절이다. 1973년 발표된 이 소설은 핵전쟁의 위기 속에 지적장애 아들과 은둔하던 한 남자가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일단의 청년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진정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지난해 88세의 나이로 타계한 오에는 1994년 일본 작가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35년 에히메현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도쿄대 불문학과 재학 중 23세에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는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 혹은 ‘전후 민주주의 세대의 거성’으로 불렸다. 작품 안팎으로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나아가 인류 구원과 공생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 한·일 역사 문제에 관해서도 자신의 소신을 뚜렷이 밝혔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