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전달보다 20조원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워 언제든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대기성 자금으로 꼽힌다. 최근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어 시장 회복세를 지켜보며 투자에 나서기 위한 준비자금이 요구불예금으로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 심리 회복에 대기 자금 늘어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623조8731억원으로 집계됐다. 5월에 비해 21조494억원(3.5%) 증가한 규모다. 요구불예금이 한 달 만에 20조원 넘게 늘어난 것은 2월(20조5503억원) 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요구불예금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현금을 보유한 채 시장 흐름을 지켜보려는 투자자가 늘어나면 함께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주택 구매가 늘어나는 등 자산시장이 바닥을 치고 올라올 것이란 기대가 커지며 하반기 투자에 대비하는 요구불예금이 증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언제든 투자자금으로 바뀔 수 있는 요구불예금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도 함께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23년 6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역대 최대치인 1062조2534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달(1056조4015억원)과 비교하면 5조8519억원(0.56%) 늘어났다. 증가 폭은 2021년 9월(6조4847억원) 이후 1년9개월 만에 가장 컸다.
가계대출을 항목별로 나눠보면 주택담보대출이 전반적인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지난달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814조8427억원으로 전월에 비해 6조9085억원 늘어났다. 주담대 증가 폭은 2020년 2월(7조7955억원) 이후 3년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은행권에선 요구불예금을 쌓아둔 투자자가 본격적으로 부동산 매수에 나서면 가계대출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장에 즉각 뛰어들기 위한 목적 외에 법인 결제성 자금이 몰린 것도 요구불예금 잔액이 늘어난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예·적금 금리 경쟁 치열해질 듯최근 은행들의 수신금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 예·적금에 자금을 묻어두는 금융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말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전월보다 4조6827억원(0.6%) 증가한 822조2742억원을 기록했다. 정기적금 잔액은 40조841억원으로 1조421억원(0.4%) 늘었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예·적금을 통해 자금을 끌어오려는 은행권 경쟁은 더 가열될 전망이다. 이날 기준 5대 은행의 주요 정기예금 상품 최고금리는 만기 1년 기준 연 3.72~3.9%로 집계됐다. 전달보다 상·하단 금리 수준이 약 0.2%포인트 올랐다.
은행권의 수신 금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자금 조달 수단인 은행채 금리가 연 4%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105%로 완화됐던 예대율 규제가 이달부터 100%로 다시 강화됐다. 예대율은 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 잔액 비율을 뜻한다. 은행들은 예대율 규제를 준수하려면 자금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은행채 발행 대신 수신금리 인상을 통해 자금을 끌어오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