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파출소장이 지역 유지와의 식사자리에 여경을 불러내 접대 및 비서 역할을 요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파출소장은 경고 처분에 그쳤고, 오히려 근무태도 불량 등의 이유로 신고한 여경이 감찰 조사를 받게 됐다.
서울 성동경찰서 소속 박인아 경위는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 경위는 "두렵고 무섭지만,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해 실명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박 경위에 따르면 서울의 한 파출소장은 지난 4월 80대 남성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 박 경위를 불렀다. 소장은 해당 남성이 관내 건물을 소유하고 지역 행사 등에 기부금을 내온 유지라고 소개했다. 박 경위는 왜 그 남성과 식사를 해야 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소장의 권유로 함께 사진까지 찍었다.
그로부터 8일 뒤 소장은 "회장님의 호출"이라며 박 경위에게 남성의 사무실에 갔다 오라고 했다. 박 경위가 몸이 좋지 않다며 거절하자 소장은 "회장님이 승진시켜준대. 똘똘하게 생겼다면서 (박 경위)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소장은 근무 시간에 박 경위에게 단둘이 실내 암벽등반장에 가자고 요구했다. 박 경위는 결국 지난 5월 병가를 내고 청문감사관실에 조사를 요청했다. 감찰 결과는 구두 처분인 '직권 경고'에 그쳤다. 근무시간에 사적인 자리에 불러낸 건 부적절하지만, 갑질이나 강요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감찰이 이뤄지면 감찰 대상자와 피해자의 분리가 원칙이지만, A씨가 병가를 냈다는 이유로 두 달 간 인사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파출소장은 경고 처분에 이의는 없으며 후배에게 잘 해주려고 한 건데 역효과가 난 것 같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위는 "제가 죽음을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인사발령이 났다"며 "초등학교 3학년인 딸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조직에서 저를 도와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박 경위가 내부망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서야 소장에 대한 인사 발령이 이뤄졌는데, 그마저도 박 경위의 상위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박 경위의 신고 이후 소장은 다른 직원들에게 박 경위의 근태나 복장 불량에 관한 진술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박 경위는 "제가 병가를 떠난 동안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파출소 내부 직원이 제보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파출소장이 저에 대한 진정을 넣었고 오히려 제가 감찰 조사를 받게 됐다"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박 경위는 경찰청에까지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회유 시도였다고 했다. 파출소장이 받은 것과 같은 '직권 경고' 선에서 마무리 해주겠다며 "앞으로도 경찰 생활 해야 하지 않겠냐"는 회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박 경위는 "한 아이의 엄마가 죽음을 생각한 게 너무 죄책감이 든다"며 "그동안 모든 채널을 통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우리 조직은 한 번도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제 노력으로 사회가 변하고, 조직이 변할 수 있다면 딸에게도 떳떳한 엄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조금씩 마음을 바꿔 앞으로도 열심히 대응할 생각"이라고 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