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인류세' 시작?…지질학계 논란 속 높아지는 목소리

입력 2023-07-12 15:36
수정 2023-08-11 00:01


지구의 역사에 인류세(人類世, epoch)라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도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인간의 무분별한 산업활동에 의해 지구환경이 악화됐음을 강조하기 위해 지질학적 으로 논란이 있는 용어인 인류세란 개념을 남용한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11일(현지 시간) 외신에 따르면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국제층서위원회(ICS) 산하 인류세 작업그룹 위원회 과학자들이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작은 호수 크로포드호에서 '인류세'가 도래했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주장했다. 핵폭발로 인해 축적된 플루토늄, 방사성 탄소와 화석 연료 사용증가로 축적된 비산(飛散)재 등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지질이 급변했다는 주장이다.

연구자인 온타리오주 브록대 고미생물학자 프란신 매카시는 “지구 시스템이 이전 1만1700년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지구 역사의 전환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 시대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1만1700년 전 시작된 완신세(完新世, Holocene)로 불리는 시기로 정의돼 왔다. 인류세의 등장은 완신세가 끝나고 새로운 시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일이다. 현대 인류가 지구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뜻이다.

다만 이 같은 주장이 정식화될 때까지는 넘어야 할 단계가 많다. 지구의 각 시대는 그 시대에 특징적인 지질화학적 특성에 따라 분류된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암석이 발견되면 과학자들은 지질화학적 특성에 따라 시대를 추정할 수 있지만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사후적으로 정의되는 개념이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자연과학계에선 사용이 배제된 지 오래됐다. 그러나 인류세가 정식화되면 앞으로 몇 세대 동안 학술 연구는 물론 각종 교재와 박물관에서 지구의 현 단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인류세작업그룹이 인류세를 공인하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면 3개의 위원회가 투표로 찬반을 결정한다. 이 과정은 올 가을 시작될 예정이다. 60% 이상의 찬성표가 나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만 아직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작업그룹 소속 한 위원회는 10년 동안 토론을 벌인 뒤 2019년 세계화, 산업화, 에너지 소비가 가속화된 20세기 중반 새로운 세(世)가 시작된 것으로 합의를 이룬 반면, 나머지 수십 명의 학자들은 최근 인류세 공식화 흐름에 반발하며 사퇴했다.

2016년 지질학회지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지난 70년간 형성된 해양퇴적층 두께는 1㎜에 불과한데 전 세계 지층에서 인류세 기록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인류세의 시작을 인류의 농경이 시작된 시기로 정의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온실가스 발생이 급증한 계기가 된 산업혁명 시기로 시작점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1784년이 인류세의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인간의 활동을 '자본주의 확장'으로 구체화해 이를 인류세 시작점으로 삼자는 학자들도 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한 1450년이나 북미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이 이뤄진 16세기 등이 인류세 시작점으로 주장된다.

이와 별개로 인류세 개념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전염병 확산 등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종말론적 시각을 담은 개념을 만들어내 지질학을 남용하는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