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미 공군의 정찰 활동을 비난하면서 한국을 향해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북한 주요 매체나 공식 문건에서 쓰지 않던 표현이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김여정은 1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 정찰기의 경제수역(EEZ) 무단 침범을 재차 주장하며 “반복적으로 무단 침범을 할 시에는 미군이 매우 위태로운 비행을 경험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또 전날 미군의 영공 침범 주장을 반박한 우리 군 당국을 향해 “대한민국의 군부 깡패들은 주제넘게 놀지 말고 당장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김여정은 전날(10일) 밤 담화에서도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가 미 국방성이나 인도·태평양사령부 대변인이라도 되는 듯 자처해 나서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동안 북한은 우리 측을 ‘남조선’ 또는 ‘남조선 괴뢰’ 등으로 지칭해 왔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더 이상 ‘남북 관계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 측을 ‘외국’으로 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공식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란 정식 국호를 쓴 것은 처음”이라며 “남한과의 관계를 ‘대적 관계’로 설정해 ‘국가 대 국가’ 관계라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2020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계기로 북한은 남북의 ‘적대적 공존’을 뜻하는 ‘두 개의 조선(투 코리아)’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의 방북 계획에 대해 북한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 기구가 아니라 외무성을 발표 주체로 내세운 점도 이 같은 정책 변화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라고 정의된 남북 관계 특수성은 이미 손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