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산부인과는 사정이 많이 안 좋아요.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데 원정출산은 늘어나기 때문이죠. 그래도 한 명이라도 산모가 있다면 그때까지 분만실을 운영할 것입니다.”
충남 논산시에서 20년간 ‘24시간 응급분만실’을 운영하고 있는 류춘수 모아산부인과 대표원장(56)은 1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세계 인구의 날(7월 11일)’ 기념행사에서 분만취약지를 지킨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동백장)을 수상했다.
2003년 문을 연 모아산부인과는 충남 서남부권 지역 산모들의 응급분만을 책임지고 있다. 20년간 아이 8000여 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저출산 여파로 논산시 산부인과들이 하나둘 분만실 운영을 포기할 때 모아산부인과는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현재 논산에서 유일하게 분만실을 운영하는 곳이다. 자동차로 40~50㎞ 떨어진 청양, 전북 익산 등에서도 산모들이 찾아오고 있다.
류 원장의 원래 꿈은 정형외과 의사였다. 그는 “산부인과는 낯설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인턴 과정에서 분만을 체험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의 환희를 느끼면서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뜻이 맞는 대학(충남대 의과대학) 후배 두 명과 세운 게 지금의 모아산부인과다.
개원 당시 논산시 월 출생아 수는 100여 명에 달했다. 현재는 30명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류 원장은 “산부인과 시설이 좋고 산후조리원까지 있는 세종이나 대전으로 원정출산이 늘면서 지역 산부인과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재 모아산부인과에선 월 10~15건의 분만이 이뤄지고 있다. 하루에 분만이 한 건도 없는 날이 절반 이상 된다는 얘기다.
급감하는 출산율은 산부인과를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류 원장도 “작년에 분만실 운영을 접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지난해 정부가 분만취약지에 대한 인건비 지원사업을 시작하면서 모아산부인과는 가까스로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류 원장은 “앞으로 10~15년 더 일하겠다”며 “지역사회를 위해 분만이 한 건이라도 있으면 계속해서 분만실을 운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류 원장은 출산율을 제고하려면 무엇보다 개개인의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며 “혼자 사는 삶을 긍정적으로만 그리는 방송 프로그램도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의과대학 쏠림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산부인과 인기가 떨어지는 것과 관련해서도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류 원장은 “출산율이 하락하면서 과거의 영광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의사들이 수입 측면에서 다른 과와 비교하기보다 산부인과가 필수의료라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류 원장은 산부인과 인력 확충을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만 대신 외래진료만 보는 산부인과 의사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분만 수가를 지금보다 높이거나 일본처럼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