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시 불러놓고 "日에 처리수 마시게 하라"는 野

입력 2023-07-09 18:23
수정 2023-07-10 00:54

더불어민주당이 9일 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만나 “IAEA가 일본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의 통행증을 지급했다”고 맹비난을 쏟아냈다. 그로시 총장은 한국 정치권의 불만을 이해하고 있다며 “IAEA는 일본의 처리수 방류가 이뤄질 경우 수십년간 현장에 상주하며 관리·감독을 이어가겠다”고 설득했다. 野 의원·시위대에 둘러싸인 그로시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대책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약 1시간 반에 걸쳐 그로시 총장과 면담했다. 그로시 총장은 지난 4일 일본에서 “일본의 처리수 방류 계획은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취지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출 안전성 평가 종합보고서’를 발표한 뒤 7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야당 의원들은 인사말부터 비판을 쏟아냈다. 일본의 처리수 방류에 반대하며 14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우원식 의원은 “IAEA는 중립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일본 편향적 맞춤형 검증을 했다”며 “주변국 영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결론을 내린 유감스러운 조사”라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이어 그로시 총장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리수를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그 안에서 수영할 수도 있다”고 말한 점을 지적하며 “그 정도로 안전하다고 확신하면 일본이 그 물을 음용수로 사용하도록 요구할 의향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대책위 위원장을 맡은 위성곤 의원도 인사말 이후 이어진 비공개 면담에서 그로시 총장에게 “IAEA가 국제기구의 본연인 중립성을 망각하고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며 “정치가 아닌 과학을 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장 밖에는 50여 명의 민주당 지지자가 ‘IAEA 보고서 100만유로에 팔았냐’ ‘그로시 입국 결사반대’ 등이 적혀 있는 현수막을 들고 모여들었다. 이들은 면담 내내 회의장 내부를 향해 ‘그로시 고 홈’ 구호를 외치고, 회의장 창문을 두드리며 격렬하게 시위했다. 이들의 소리가 면담장 내부까지 들려오자 그로시 총장은 “한국 국민들의 우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며 “민주적인 사회에서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반대 의견”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로시 “韓 우려 이해…검증 이어갈 것”격앙된 반응에 직면한 그로시 총장은 “한국을 비롯해 우려를 제기하는 곳들의 목소리를 듣고 답변해야 한다고 생각해 민주당의 초대에 임했다”며 “반대 의견에 대한 개방성과 존중을 바탕으로 IAEA가 이번 보고서에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방식으로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을 명확하게 잘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처리수 방류에 대한 국내 불안을 의식한 약속도 나왔다. 그로시 총장은 “IAEA는 향후 수십 년 동안 방류 현장에 상주하며 방류 절차와 장비 기능을 국제 안전기준에 따라 검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로시 총장은 면담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시위대를 피해 현장을 급히 빠져나갔다. 그는 2박3일의 방한 기간에 유국히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박진 외교부 장관과도 면담했지만 모두 비공개로 이뤄졌다. 일본에서 3박4일 동안 세 차례 이상 기자회견을 한 것과 달리 언론과의 접촉도 개별 매체와의 인터뷰에 그쳤다.

한 외교 소식통은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소비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또다시 일본 가는 野야당은 그로시 총장과의 면담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며 해외 정치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슈 확산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10일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의원단을 일본으로 파견한다. 이들은 일본 야당 의원들과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고, 현지에서 외신 기자간담회를 열어 처리수 방류 저지를 호소할 예정이다.

김근태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국제기구의 사무총장에게 ‘고 홈’을 외치는 시위대가 손상한 국격은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범진/맹진규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