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만 12개 갖고 다닌다"…속터지는 전기차 차주들

입력 2023-07-07 14:44
수정 2023-07-07 21:07

전기차 아우디 e-트론을 타고 다니는 김모 씨(57)는 보유한 전기차 충전기 카드(각종 애플리케이션 등)만 12개다. 충전을 하려고 할 때마다 각 사업자 서비스의 회원으로 가입한 결과다.

환경부와 한국전력공사 등 정부가 주도해오던 국내 전기차 시장에 최근 몇 년새 대기업,중소기업이 잇달아 뛰어들면서 소비자들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전기차주들은 제각각인 충전소 요금과 충전 규격 탓에 매일 적합한 충전소를 찾아 헤매야 한다. ○반쪽짜리 ‘통합카드’7일 환경부에 따르면 전기차 충전 사업자는 지난달 말 기준 109개에 달한다. 2020년 12월 말 52개에서 2년 반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매년 30% 이상 폭증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 전기차 충전 사업을 민간에 개방하고 충전기를 설치하면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와 SK, LG, GS그룹 등 대기업과 중소 업체들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문제는 단기간에 사업자가 증가하다 보니 충전소별로 요금과 회원 혜택 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한 전기차 차주는 “월 1만~2만원의 구독 서비스를 신청할 경우 해당 업체의 충전기만 써야 하는데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고속도로 등을 다니다 보면 생소한 업체의 충전기를 사용해야 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런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몇몇 업체는 ’통합카드' 기능을 탑재한 앱을 출시하기도 했다. EV인프라(소프트베리), 일렉베리, 모두의충전 등은 여러 충전기 브랜드에서 통합카드 한 장으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환경부도 지난 29일 회원카드 1장으로 모든 충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충전사업자 간 결제정보 연동(로밍)을 확대한다.

그러나, 이는 충전사업자 간 결제정보를 주고 받는 로밍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B 충전소에서 쓰던 카드를 A 충전소에서도 쓸 수 있지만, 비회원 요금을 내야 하는 식이다. 충전기 운영업체끼리 제휴를 맺어야만 통합카드를 쓸 수 있다. 결국 전기차주들이 충전요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카드를 새로 발급받는 게 유리하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여러 업체가 난립하고 있어 충전 사업자 간 완벽한 제휴가 어렵다”며 “현재로선 회원 가입을 늘려 요금을 아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세업체의 경우 충전기 설치 보조금만으로 이익을 남긴 뒤 방치하는 사례가 많아 통합이 어려운 때도 있다. ○충전 규격·통신 표준 전쟁도차량 제조사별로 충전구 모양이 달라 적합한 충전기 커넥터를 찾아가는 것도 일이다. 전기차 급속 충전기 규격은 테슬라의 ‘슈퍼차저’가 사용하는 북미 충전규격(NACS)과 현대차그룹 등이 채택한 CCS1(DC콤보)로 크게 나뉜다. 일본의 차데모, 중국의 GB/T도 있다. 국내선 2014년 ‘DC콤보’가 표준으로 채택돼, 3년 전부터 설치되는 충전되는 충전기는 CCS기반 ’DC콤보‘ 충전기다.

통상 테슬라 차주들은 어댑터(보조 기구)를 사용해 규격이 다른 충전기 케이블이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CCS 기반인 현대·기아차 충전 플랫폼 ’이피트(E-pit)‘는 어댑터 사용을 막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충전기 제조사마다 차량과 충전기 간의 통신 프로토콜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어서 전기차주들은 더 번거롭다. 전기차와 충전 스테이션이 계량·충전상태 등의 정보를 주고 받으려면 유무선 통신 시스템이 필요하다. 통상 TCP-IP와 OCPP가 쓰이곤 한다.

개별적인 통신방식을 사용하는 운영사업자들이 우후죽순 생기자,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작년 12월 21일 '전기자동차 충전스테이션 관리 시스템'표준을 개정했다. OCPP라는 개방형 충전기 프로토콜을 충전기와 관리 서버 간 통신 표준으로 정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표준은 강제성이 없으므로 각 충전기 제조사와 사업자가 알아서 효율적인 프로토콜을 선택해 적용할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양동학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충전 방식 규격과 통신 프로토콜 모두 표준이 있어야 한다"며 "표준이 안 된 상태에서는 운영비도 더 들고 사회적 혼란만 커진다"고 설명했다.




수요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곳에 설치하는 사례도 많다는 지적이다. 충전소 수는 늘고 있지만 고속도로 등 필요한 곳에선 장시간 대기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이동 거점인 고속도로 위 급속충전기는 현재도 부족하다. 무공해차 누리집에 등록된 충전기 23만505대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충전기는 0.5%도 채 안되는 1164대 뿐이다. 경부고속도로(부산 방면) 18개 휴게소 중 전기차 충전기는 모두 70대에 불과하다.이마저도 교통량이 많은 수도권엔 숫자가 적다. 경북 칠곡군 칠곡휴게소엔 13대가 있지만 서울 양재와 기흥 등엔 2대밖에 없다. 경부고속휴게소 한 개당 평균 설치 대수(3.8대)의 절반 수준이다.

관리 상태도 미비하다. 충전기 70대 중 6대는 작동을 안하거나 앱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총 4대가 있는 경북 봉산면 추풍령 휴게소에서 1대는 불량이었다. 옥산휴게소(부산)에는 50kw, 100kw짜리 각각 한 대씩 있는데, 앱에는 1대만 떴다.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대영채비 충전기 두 대는 몇 달째 가동도 안되는 채 서 있었다. 총 6대가 있는 김천휴게소에선 1대가 상태 미확인으로 나타났다.

예고도 없이 자리를 옮긴 충전소도 있다. 환경부가 제공하는 충전기 현황 정보에 따르면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면) '기흥휴게소'에는 급속충전기(50kW) 두 대가 있다. 현장 확인 결과 전기차 충전기가 있던 자리에 수소차 충전소가 있다. 입구 진입 후 오른쪽으로 난 우거진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주차장으로 위치를 옮긴 것이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