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좀 찾아오세요"…日 도쿄디즈니랜드의 '파격 전략'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3-07-06 07:03
수정 2023-07-06 11:34


가성비 넘어 시(時)성비의 시대가 온다(1~3)에서는 '시간 대비 성능'을 뜻하는 시(時)성비가 일본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업의 전략도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지난 4월15일 도쿄디즈니리조트가 개원 40주년을 맞았다. 40년 동안 8억명이 도쿄디즈니리조트를 찾았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도쿄디즈니리조트 방문객수는 3256만명으로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하루에 9만명이 방문한 셈이다.



도쿄디즈니리조트는 동화 나라를 무대로 하는 디즈니랜드와 바다를 테마로 한 디즈니씨 두 개로 구성돼 있다. 이해 도쿄디즈니랜드와 도쿄디즈니씨 방문자는 각각 1791만명과 1465만명으로 전세계 테마파크에서 3번째와 4번째로 많았다. 둘을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은 테마파트인 미국 플로리다주의 디즈니월드(2096만명)를 훌쩍 뛰어넘는다.



도쿄디즈니리조트의 운영사 오리엔탈랜드컴퍼니(OLC)는 지난해 하반기 중기 경영 계획을 발표하면서 2024년 입장객 목표를 제시했다. 2018년 기록한 '3256만명 이상'을 제시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OLC가 내놓은 목표는 2600만명. 2018년보다 20% 적은 수치다.

'디즈니랜드에 좀 적당히 오시라'는 새 전략은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고객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일본생산성본부의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도쿄디즈니랜드는 2015년 이전까지 80점대 중반의 높은 점수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7년 만족도가 77점까지 하락했다. 놀이기구 하나 타는데 2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데 대한 불만이 점수에 반영된 것이다.



도쿄디즈니랜드가 전략을 바꾸게 된 계기는 코로나19였다. 일본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입장객 숫자를 하루 5000명, 1만명 등으로 제한했더니 2021년 만족도 점수가 84점으로 개선됐다. 입장객은 크게 줄었지만 2022년 객단가는 1만5759엔으로 코로나 이전보다 40% 늘었다.

덜 붐비면 입장객들이 돈을 더 많이 쓰면서 만족도와 수익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의 시(時)성비 중시 트렌드가 테마파크의 전통적인 경영전략을 바꿔놓은 사례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도쿄디즈니랜드는 2021년 10월부터 요일에 따라 '원데이패스' 가격이 7900~9400엔까지 4단계로 바뀌는 탄력요금제를 도입했다. 2022년 5월에는 놀이기구를 예약할 수 있는 유료서비스도 시작했다. 2000엔을 내면 2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인기 놀이기구 '미녀와 야수'를 줄 서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다.

기업의 전략도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바뀔 수 밖에 없다. 최근 일본 기업의 신상품 개발 담당자들은 '시성비를 중시하는 트렌드에 맞춰 신제품을 내놨다' 같은 표현을 빠지지 않고 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