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왕이 "한국인과 일본인, 코 세운다고 서양인 될 수 없다"

입력 2023-07-05 22:06
수정 2023-07-19 00:31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이 중국과 한국·일본의 3국 협력을 강조하며 인종을 거론했다. 외신들은 "일본이 20세기 초반 주장한 '대동아 공영권' 이나 마찬가지 얘기"라고 비판했다.

5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왕 위원은 최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일 협력 포럼에서 3국의 협력을 강조하며 "아무리 금발로 염색하고 코를 오똑하게 세운다 해도 유럽인이나 미국인이 될 수 없고 서양인도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서양인들은 누가 중국인이고 일본인이고 한국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며 "자기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왕 위원의 발언은 한중일 3국의 인종적 유사성을 거론하며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결국 인종에 기반한 발언으로 인종차별적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엘 앳킨슨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미국 CNN 방송에 "제국주의 일본은 세력을 확장하면서 '대동아공영권'을 선언했고 식민 지배를 '인종 해방'으로 포장했다"며 "왕 위원의 발언에 대한 한국과 일본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중국의 동북아 이웃 국가들은 당연히 중국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지역 질서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데 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확장 정책과 북한에 대한 안보 우려로 한미일 3국 관계는 최근 더욱 강화되고 있다. 3국은 올해 북한의 미사일 위협 증가에 대한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판단되는 대만 해협의 긴장에 대한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일제히 왕 위원의 발언을 비판했다. AP통신은 "미국은 개방된 사회와 다당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일본과 한국과 안보 동맹을 맺고 있고, 이는 중국의 엄격한 권위주의 일당 체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며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은 북한과 러시아"라고 꼬집었다. 이어 "중국은 수 세기 동안 스스로를 동아시아의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지로 여겨왔다"며 "중국은 시진핑 국가 주석의 공격적인 외교 정책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캠페인에 따라 이러한 역할을 되찾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프 스미스 미국 연구소 헤리티지재단의 아시아 연구센터 소장은 중국과 한국,일본계 미국 시민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들은 미국을 구성하는 일부"라며 "그들이 될 수 없는 것은 중국인"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싱크탱크 독일마셜기금(GMF)의 아시아국장 보니 글레이저는 트위터에 "이 메시지는 한국과 일본에 잘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매일 미국인이 되고 있지만 중국인이 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 비판에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