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아이 안 낳을 자유와 국가의 생존

입력 2023-07-05 18:14
수정 2023-07-06 00:51
올해 결혼 소식을 알리는 안내장이 부쩍 늘었다. 이른바 ‘보복 결혼’ 행렬이다. 하지만 지난해 24만9000명에 불과했던 출생아 수가 얼마나 반등할지는 잘 모르겠다. 한 해 50만 명 이상이 태어난 해는 2001년(55만7000명)이 마지막이었다. 벌써 20여 년 전의 까마득한 일이다. 연간 100만 명대가 태어난 1970년대 초 베이비붐 세대가 30년이 지나 낳은 아이들이 딱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 살배기 아이들이 30세가 돼 낳는 자녀는 몇 명이나 될까. 합계출산율 0.78명 수준이 유지된다면 10만 명 선에 턱걸이할지도 모른다.

저출산은 개인의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진 자생적 질서다. 국가적 단위에선 재앙이지만, 남녀 개인이나 개별 가정 단위에선 자유의지의 문제다. 주택비용과 사교육비 부담 운운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기대수명과 생애소득, 삶의 질에 대한 우선순위 변화 등에 비춰볼 때 아이를 낳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성가시다고 느끼는 것이 저출산 문제의 본질이다.

신체구조상 임신과 출산, 수유 부담을 홀로 안아야 하는 여성들에겐 특히 그렇다. 남녀 공동육아가 각 가정이나 직장에서 순조롭게 이뤄진다고 해도 이 문제만은 온전히 남는다. 자아실현과 안락한 삶의 욕구에 눈뜬 여성들은 생각 밖으로 예민하고 절박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언어능력과 전문성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취업할 수 있는 세상이다. 출산과 양육을 본인 행복의 걸림돌로 여기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체로 부합한다.

재정지출 확대와 출산율 증가의 인과관계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매년 적잖은 예산 편성에도 출산율은 계속 뒷걸음쳐왔다. 돈으로는 결코 아이를 얻을 수 없다. 게다가 보조금 지원 대상을 정밀하게 가려내지 못하면 정부 지원이 없더라도 아이를 낳을 부모들에게 헛돈을 쓰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선 자신의 세금이 남의 아이 양육에 투입되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개인 자유권의 영역인 결혼과 출산에 정부가 과도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애꿎은 자녀 세대에게 “가족 가치를 모른다” “늙으면 외롭다”고 타박할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다.

그래도 한국 출산율은 지나치게 자기 파괴적이다. 젊은이들의 현세적 욕망 탓을 하더라도 유별나다.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누가 나서야 할까. 정부와 국회, 그리고 기업이다. 법과 제도를 다루면서 조직과 예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연간 출생자 20만 명 시대에 맞춰 국가 자원배분의 틀을 바꾸고 교육과 취업, 기업 인사제도와 노동 관련 법제를 모두 출산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 말을 꺼냈다가 유야무야된 학령제 개편 같은 개혁과제들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 넘쳐나는 교육재정을 기반으로 사교육 부담이 큰 영어유치원을 학교 울타리로 흡수할 수 있다. 어차피 일찍 영어를 배워야 먹고살 수 있는 시대다.

저출산 타개를 위한 궁극적 해법은 경제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생산성이 높은 나라는 출산율이 높다. 일자리가 많은 기업도시도 예외 없이 그렇다. 사람들은 미래를 보고 투자한다. 아이를 낳는 것도 중요한 투자다. 도달 가능한 미래를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은 5000만 인구로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나라가 아니다.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면 생산성을 두 배로 끌어올려야 한다. 노동·자본·기술 생산성을 향상하는 것만이 인구 감소 속도를 줄이고 산업과 기업과 일자리를 지키는 길이다.

이런 연유로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당연히 출산율에 해롭다.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노동제도 개편도 저출산을 부추긴다. 경직적 규제와 기업 투자를 저해하는 법령은 자본 활력을 떨어뜨린다. 로스쿨·의과대학 쏠림과 교육 관치는 기술 생산성을 위협한다. 해답이 뻔하고 방법론도 드러나 있다. 알면서도 못 하는 것이 문제다. 구조개혁을 외면하면 국민 생산성이 떨어지고, 여기에 절망한 출산율은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진다. 대통령이 구조개혁 기회를 놓쳐 국민을 경쟁력 없는 천덕꾸러기로 만드는 것은 중대한 직무유기다. 정치인과 기득권자들이 구조개혁을 막아서는 것도 출산에 역행한다. 만약에 대한민국이 소멸한다면 그것은 인구 감소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 전에 생산성 추락에 따른 대탈출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