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안양지청이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지부장(기아차 노조 위원장)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장기 근속한 직원 자녀를 우선채용하는 '고용세습 조항'을 시정하라는 정부의 시정명령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상급 단체인 산별노조와 함께 하부 조직인 지부장에게도 출석을 요구해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고용부가 시정명령 위반을 실제로 주도한 기아차지부를 정조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기아차지부 소식지에 따르면 안양지청은 지난 3일 기아차지부장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안양지청은 기아 노사에 ‘(해당 조항이) 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후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시정명령 절차에 들어갔다.
기아차지부가 기아와 맺은 단체협약 26조에는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 퇴직자 및 장기근속자(25년 이상)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때문이다.
고용부는 지난해부터 산재 사망자의 직계 자녀를 제외한 정년 퇴직자나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것은 위법한 단체협약이라고 판단, 100인 이상 사업장 1057곳의 단체협약을 전수조사해 위법한 우선·특별채용 조항이 확인된 60곳에 대해 작년 8월부터 시정조치에 나선 바 있다.
시정명령에도 노사가 이 조항을 고치지 않으면 노조와 노조위원장, 기업과 기업 대표는 각각 최대 벌금 500만원을 부과받을 수 있다. 이에 기아와 비슷한 시기에 시정명령을 받은 LG유플러스와 현대위아 등은 노사 협의를 거쳐 단체협약을 개정하는 등 대부분 개선을 완료했다.
하지만 기아차지부만이 시정명령을 끝까지 거부하자, 안양지청은 결국 기아 노사를 단체협약 시정명령 불이행에 따른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조사에 착수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아차지부가 아닌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기아와 기아 대표만 입건해 논란이 됐다. 정작 시정명령을 거부해 사태의 원인이 된 기아차지부장은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의 하부조직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기아 사측은 노조에 공문을 보내 시정명령에 따라 단체협약을 개정하자고 여러 차례 요구했음에도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법을 위반하는 사람 따로, 책임지는 사람 따로’라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기아차지부장을 본격 소환한 것이다. 노조의 시정명령 위반 사건에서 상급단체위원장과 함께 지부장까지 소환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고용부는 “산별노조가 있어도, 교섭권이 지부장에게 위임됐다면 지부장도 추가 입건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부는 지난 4일 소식지를 통해 지부장 소환 사실을 전하며 “단체협약 우선채용 조항은 이미 사문화됐으며 수십 년 동안 실제 적용된 사례는 전혀 없다"며 "고용부의 강제 시정명령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한편 노사관계전문가들은 시정명령 미이행에 따른 처벌 수위가 최대 벌금 500만원에 불과해 대형 노조의 변화를 끌어내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연내 마련할 공정채용법(채용절차법 개정안)에 고용세습을 채용 비리와 같은 불공정 채용 행위로 규정하고, 미이행 시 처벌 수위를 징역형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