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라면 물가의 1년 전 대비 상승 폭이 13.4%에 달해 14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5월보다도 상승 폭이 커지면서 한 달 만에 기록을 새로 썼다. 이는 지난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언급에 따른 일부 라면 출고가 인하분이 아직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6월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23.95를 기록해 지난해 6월보다 13.4%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5월 상승률이 13.1%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기록을 바꿨다. 라면 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2021년 4분기 부터 상승세를 그렸다. 특히 지난해 9월 3.5%에서 10월 11.7%로 오르며 단숨에 10%를 넘어선 후 계속 10%를 웃돌고 있다.
이같은 라면 물가 상승은 지난해 제품 가격 상승이 반영된 여파다. 국내 1위 라면기업 농심은 원가 상승분 등을 고려해 지난해 9월 라면 26종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했다. 이후 다음달 팔도, 오뚜기 역시 라면 평균 가격을 각각 9.8%, 11% 올렸다. 삼양식품은 같은해 11월 13개 브랜드 라면 가격을 평균 9.7% 상향 조정해 주요 라면기업 4사가 모두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달 라면 물가 추세는 점차 둔화하는 기조를 보인 전체 물가 상승률과 상당한 격차를 나타냈다. 6월 전체 물가 상승률은 2.7%로 라면(13.4%)과 격차가 10.7%포인트에 달했다. 2009년 1월(11.0%포인트) 이후 14년 5개월 만에 최대치다. 다만 라면뿐 아니라 가공식품, 외식 물가도 전방위적으로 상승했다. 6월 가공식품 물가는 7.5% 상승했고, 외식 물가도 6.3% 올라 석유류 가격 하락 여파로 낮아진 전체 물가 상승률을 큰 폭으로 웃돌았다.
7월에는 라면기업들이 정부의 물가 안정 시책에 맞춰 일부 제품 가격을 내린 만큼 라면 물가 상승률도 둔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주요 라면기업은 이달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 대표적으로 시장 1위 농심이 신라면 출고가를 4.5% 내렸다. 신라면 가격 인하는 2010년 이후 13년 만이이다. 이와 함께 삼양식품이 12종, 오뚜기는 15종, 팔도는 11종 가격을 내렸다.
이는 제분사의 소맥분 가격 인하로 인한 조치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제분업계에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구했고, 이에 제분(밀가루)·라면업계가 가격 인하에 돌입했다. 기업들의 가격 인하 결정은 추 부총리가 라면을 정조준해 인하를 권고한 후 채 2주일도 되지 않아 이뤄졌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라면 가격과 관련해 "지난해 9∼10월 (기업들이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가격 인하 품목이 한정된 데다 일부 회사의 경우 주력 제품이 인하 대상에서 제외된 만큼 둔화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농심은 안성탕면, 짜파게티, 너구리 등 가격을 유지했고,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오뚜기는 진라면, 팔도는 팔도비빔면 등 인기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라면기업 제품 가격 인하에 대해 성명서를 내고 "인하율 및 제품 종류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며 "지난해 9월 농심은 신라면 10.9%, 너구리 9.9% 등 라면 26개 품목 가격을 인상했으나 이번에는 신라면만 4.5% 인하해 지난 인상분의 절반만큼만 인하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