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운명을 바꿔놨다. 코미디언 출신의 검증되지 않은 정치인은 위기의 조국을 승리로 이끌 강인한 전사 지도자로 탈바꿈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우리 시대의 윈스턴 처칠"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전쟁이 끝나면 그의 리더십은 어떻게 될까. 2022년 7월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민 65%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하는 데 반해 전후 재건을 이끌 지도자라고 본 이는 55%에 불과했다.
포린어페어는 4일(현지시간) "전쟁이 마침내 끝나면 젤렌스키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향후 행보를 분석했다.
포린어페어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첫 번째 과제로 '애국심과 통합감의 창출'을 꼽았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이 하나로 뭉쳤지만, 전쟁으로 형성된 통합감은 전쟁이 끝나면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쟁 전까지 우크라이나 사회 발전을 가로막았던 연고주의, 뇌물, 부패 등의 폐습이 부활할 수도 있다고 포린어페어는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높은 인기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국가 재건을 위해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스스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유혹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민영 텔레비전을 단일 국영방송사로 통합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우크라이나 정부의 설명이지만, 싱크탱크와 비영리단체들은 전쟁 뒤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러한 조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정체성이 지나치게 강해진 나머지 배타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린어페어는 "시민의 의무와 국가에 대한 애착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시민적 국가 정체성의 부상은 우크라이나 독립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국가 정체성을 민족 정체성과도 연결시키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이러한 흐름을 이용해 '분열의 정치'를 추구한 사례로 유럽 극우주의 일부 정당들을 언급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