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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한 뒤 미 월가 투자은행(IB)이 신흥국 국채 투자를 연달아 조언하고 나섰다. 선진국보다 견고한 경제를 나타내며 피벗(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 월가의 IB가 연달아 신흥국 국채 투자를 제언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투자자 서한을 통해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3개국 국채를 투자를 추천했다. 시티그룹은 인도, 한국, 브라질 국채 비중을 늘리라는 조언을 내놨다. HSBC는 남미 국가의 장기 국채 투자를 권유했다.
투자은행이 앞다퉈 신흥국 투자를 조언하는 이유는 신흥국의 통화정책 때문이다. 올해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한 선진국과 달리 금리를 동결한 국가가 점차 늘고 있다. 대만. 인도,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폴란드, 멕시코 등은 최근 기준 금리를 동결했다. 헝가리는 금리 인하를 예고했고, 브라질도 오는 8월부터 인하할 여지를 내비쳤다.
폴 그리어 피델리티인터내셔널 자금관리자는 "신흥국 중앙은행은 선진국보다 일찍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면서 그 혜택을 올해 누리고 있다"며 "이전처럼 미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을 따라가지 않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흥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완화하자 통화 정책을 전환할 것이란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이 좀체 떨어지지 않는 선진국과 달리 태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은 목표 범위까지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시티그룹의 신흥시장 인플레이션 지수는 지난달까지 11개월 연속 하락했다. 물가상승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은 인플레이션 탓에 추가 금리인상을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달 28일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포럼에서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올해 안으로 2회 이상 금리인상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은행 총재와 ECB 총재도 이에 동조했다.
아닌다 미트라 BNY멜론 아시아 투자 책임자는 "대다수 신흥국은 지난 2년간 금리 인상에 공격적으로 나섰다"며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제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금리 정책이 엇갈릴 가능성이 커지자 투자은행은 이자율스와프가 유망하다고 전망했다. 금리인하 가능성이 큰 신흥국에서 변동금리 조건으로 대출받고, 해당 국가의 고정금리 국채에 투자하라는 주장이다.
골드만삭스는 인도 루피화, 이스라엘 셰켈화, 남아공 랜드화로 표시된 채권 투자를 권유했다. 시티그룹은 원화 채권을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오는 10월 한국은행이 양적완화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모건스탠리는 콜롬비아와 브라질을 주시하는 중이다.
그리어 자금관리자는 "남미 국가가 가장 먼저 금리 인하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며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와 페루 등의 국채를 보유하는 게 안정적인 투자방식이다"라고 주장했다.
신흥국 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캐리트레이드도 활성화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8개국 신흥시장 캐리트레이드 지수는 올 상반기 5% 상승했다. 2017년 이후 최고치다. 캐리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통화로 자금을 조달한 뒤 금리가 높은 곳에 투자하며 차익을 거두는 투자방식을 뜻한다.
달러화로 자금을 조달한 뒤 신흥국 통화로 표시된 회사채, 원자재 등을 매입하는 투자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선진국보다 앞서 금리를 인상한 탓에 신흥국 금리 수준은 선진국을 크게 웃돌고 있다. 실제로 브라질 기준금리는 13%대를 웃돌지만, 미국 기준금리는 5%대에 머물고 있다. 신흥국 현지 통화 수요가 증가하면서 달러화 약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닐 시어링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 중앙은행은 이번 인플레이션 사태를 계기로 비난받고 있지만, 반대로 신흥국은 신뢰도를 회복했다"며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신흥국 경제는 올해 계속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