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이 해운 활동에서 배출되는 탄소에 세금을 부과하는 규제안 마련에 나서자 중국이 개발도상국을 규합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선진국은 ‘기후위기 대응’을 강조하는 반면 중국은 ‘선진국의 횡포’라고 맞서고 있다.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한국은 규제 환경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은 이달 국제해사기구(IMO) 회의에 앞서 선진국들이 해운업계 탄소 배출에 세금을 부과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할 것을 촉구하는 ‘외교적 메모’를 개도국에 전달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달 IMO 회의에서 해운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채택하려고 하자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중국은 선진국이 그동안 자신들이 배출한 탄소에 대해선 비용 부담을 하지 않고, 인제 와서 개도국에 탄소 배출 감축 비용을 전가하는 행태는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입장이다.
FT에 따르면 중국은 개도국에 지나치게 높은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국제 해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라고 언급했다. 또 물류 비용을 크게 증가시켜 세계 경제 회복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봤다. 선진국이 자국의 시장 경쟁력을 개선하기 위한 위장술로 기후위기를 활용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해운 탄소세도 결국 선진국 ‘녹색 보호주의’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운 온실가스에 세금을 부과하면 1년에 1000억달러 정도가 거둬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선진국들은 중국이 전 세계 탄소 감축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이 세계 최대 수출국이자 대규모 해운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해운은 세계 무역 운송의 90%를 전담하는 탄소 고배출 산업이다. IMO는 2050년까지 2008년의 절반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달 2050년에 ‘넷제로(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는 것으로 목표치를 상향할 방침이다.
하지만 중국을 중심으로 탄소배출세 부과에 불만을 품은 국가들이 결집하면서 이달 IMO 회의 향방이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수출 비용 상승을 우려해 해운 부문에 탄소배출세를 부과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세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의 샅바 싸움은 쉽게 타협을 보기 힘든 주제라는 의견이 많다.
한국은 IMO의 규제 강화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탄소중립 강화 움직임이 국내 조선업계에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여지가 많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조선업계가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 진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액화천연가스(LNG)선 시장에서 한국의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이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