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수십 년간 공짜로 사용해 온 시 소유 건물을 다른 민간단체에 개방한다. 해마다 수억원에 달하는 건물 시설 보수비와 인건비 등의 지원금도 자연스럽게 끊길 예정이다. 관행처럼 굳은 노조의 ‘공짜 사무실’ 독점 사용이 점차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조 사무실 비워야”
2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의회는 노동단체들과 수의계약 형식으로 맺어 온 관내 근로자종합복지관 두 곳의 위탁운영 계약을 공개 입찰 방식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동의안을 오는 5일 표결에 부친다. 이 동의안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5월 30일 제출한 것이다. 시의회 의원 112명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76명)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동의안은 서울 여덟 곳의 노동자복지관 중 오는 9월 위탁 운영권이 만료되는 아현동 강북노동자복지관과 영등포동 서울시노동자복지관의 입찰 방식을 수의계약에서 공개입찰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북노동자복지관엔 위탁 운영자인 민주노총 산하 전국 금속노동조합 서울지부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본부 사무실이 있다. 서울시노동자복지관엔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와 전국택시노련 서울본부, 전국식품산업노련 등이 입주해 있다. 여덟 곳의 노동자복지관 중 한국노총이 다섯 곳을, 민주노총이 한 곳을 운영 중이다. 서울시는 나머지 여섯 곳은 이번에 시의회에 제출한 동의서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일부 복지관은 비슷한 절차를 거칠 가능성이 높다. 수십 년 독점 사용 깨진다한국노총은 1992년부터 서울시노동자복지관을, 민주노총은 2002년부터 강북노동자복지관을 사용해 왔다. 입주 후 2~3년마다 수의 계약 형식으로 계약을 연장해 왔다. 이들은 건물의 시설보수비, 인건비(미화원 등 시설관리) 등의 지원을 받는다. 올해 예산 편성액 기준 서울시는 강북노동자복지관에 4억원, 서울시노동자복지관엔 2억4000만원을 투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위탁 계약을 관행처럼 연장했기 때문에 운영 주체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위탁 운영자가 다른 민간 기관으로 바뀌면 노조는 사무실을 비워야 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 안팎에선 노동자복지관이 사실상 노조 사무실과 선전 장소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을 위해 강북노동자복지관을 찾았던 한 근로자는 “건물 내부에 ‘윤석열 타도’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같은 문구가 가득해 위화감이 들었다”며 “조합원이 아니면 반기지 않는 분위기여서 그냥 나왔다”고 말했다.
공개 입찰이 시작되면 양대 노총은 재위탁자로 선정되기 위해 서울시가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지금과 달리 건물 사용에 많은 제약이 생긴다는 얘기다. 경쟁도 치열할 전망이다. 복지관 운영 기관에 이른바 ‘MZ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가 강북노동자복지관 쪽에 입찰 의사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 각지에는 양대 노총에 맡겨진 공공 시설물이 적지 않다. 민주노총 경기본부가 리모델링비 등 70억원이 들어간 수원 인계동 경기도노동복지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시의 움직임은 다른 지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전국에 있는 노동자복지관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102곳 중 정부 지침을 어겨 운영하는 곳이 54곳(52.9%)에 달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