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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원자재 안보 강조에도 광산 기업은 대중에 비호감
엔지니어 IT 사무직 등 대졸 신세대 외면
오지 근무에 성희롱 난무..."취업 선호도 최악"
글로벌 광산·에너지 기업들이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호주·유럽 등의 주요 광산·에너지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최근 1~2년 간 사상최대 수익을 올렸다. 스위스 광산기업 글렌코어는 석탄 가격 폭등에 힘입어 지난해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 340억달러(약 45조원)을 쓸어담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석탄 르네상스를 즐기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흐름에 역행하는 업종이란 비판 때문에 신입사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각국 정부가 원자재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뛰는 기업들은 역적 취급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구리, 리튬 등은 친환경 에너지 생산을 위한 공급망의 중요한 부분임에도 환경론자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다. 거친 남성 위주의 보수적이고 여성 친화적이지 않은 기업문화 역시 젊은 대졸자들이 업계를 외면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취업 박람회만 가도 환경단체 시위영국 리즈대 지질학 박사과정 대학원생 릴리 딕슨(24)은 캠퍼스를 지나던 중 광업과 석유·가스 기업의 캠퍼스 리쿠르팅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전단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얼마전 캐나다 광산업체 모슨 골드와 함께 코발트 광산을 탐색하기 위해 핀란드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한 광산·에너지 업계 구인난의 한 단면이다. 리즈대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영국 주요 대학 중 네 곳은 광산기업의 캠퍼스 내 채용 활동과 취업박람회 참가를 금지했다. 영국 광산기업 리오틴토는 최근 보고서에서 "사회적 기대치가 변화하면서 고용주로서 브랜드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호주를 비롯해 유럽의 주요 광산·에너지 업체들은 특히 고급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엔지니어를 비롯해 탐사 지질학자, 데이터 분석 기술자 등 고숙련 직종의 충원이 부족해 성장에 차질이 예상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 광업·금속협의회 로히테시 다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광산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45세 이상"이라며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상당수가 나이가 많고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맥킨지 컨설팅이 실시한 글로벌 설문조사에 따르면 광산·에너지 업계 경영자 86%가 '인력 채용과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호주의 광업 일자리 수는 2016년 5월 2500개에서 올해 2월엔 1만600개로 증가했다. 인력 충원율로 보면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캐나다의 광업 일자리 공석 비율(job vacancy rate)은 2015년 이후 꾸준히 상승해 작년 여름엔 채광 및 채석 직종에서 약 4%, 광업 지원 활동에서 6%를 기록했다. 미국도 광업 일자리 공석률이 5년 전 3.6%에서 최근 5.1%로 높아졌다.
'더러운 업계' 인식에 발목잡혀맥킨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15~30세 응답자의 70%가 광산업계에서 "일할 생각이 전혀 없다" 혹은 "일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 응답을 했다. 건설 유통·운송 등 다양한 업계 가운데 에너지·광산업의 취업 선호도는 최하 수준으로 나타났다.
ESG 등 환경과 관련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광산업체들은 개발도상국 노동자 착취 의혹도 받는다. 광산업계 홍보대행사 지오로지즈 헤이든 모튼 CEO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광산 기업들은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의 국가들에서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다하지 않는 편"이라고 꼬집었다.
광산업이 남성 중심적이란 점도 구인에 장애물이다. 영국 리오틴토가 직원 1만명의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광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28%가 성희롱을 경험했고, 21명의 여성은 지난 5년 동안 성폭행·성추행 사례를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컨설팅 기업 EY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광업 및 금속 산업의 여성 인력 비율은 약 12%로, 건설업 다음으로 성별 불균형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광산은 대부분 아프리카 등 해외에 있고 국내에 있더라도 오지에 있다"며 "여성이 선호하지 않는 환경"이라고 전했다.
관련 전공생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 국립교육통계센터에 따르면 미국에선 2020년 대졸자 수가 2015년보다 8% 이상 증가했으나, 지질학·지구과학 전공생은 25% 가까이 감소했다. 광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캐나다와 호주도 마찬가지다. 호주의 경우 광업 관련학과 졸업생 수가 2014년 대비 2020년에 63% 감소했다. 캐나다 광산업 인적자원위원회에 등록된 엔지니어는 2016년부터 2020년 사이 10%가량 줄어들었다.
인식개선 노력중인 업계광산·에너지 기업들은 나쁜 대중 인식을 개선해 채용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호주 최대 광산기업 BHP는 대졸자 뿐 아니라 인턴·견습생 형태로 최대 3500명을 모집해야 한다. 여러 국가에 진출한 기업은 광산이 있는 곳의 현지 인력 채용을 늘리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선 광업이 선호 업종인 경우도 있다. 칠레에선 국영 구리 광산기업 코델코가 스위스 식품기업 네슬레 등과 함께 현지 대졸자 취업 선호도 10위 안에 들었다. 장기적 대책으론 비영리 단체와 협업해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지질학, 지구과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한편 광업·에너지 기업들이 인력 확보를 위한 비용을 늘리는 가운데 정부로부터 양방향 압력을 받으면 에너지·원자재 값이 급등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유럽의 경우 정부의 정무·외교 관련 부처에선 안보 차원에서의 광물·에너지 자원 확보를 강조하는 반면, 환경 관련 부처와 의회 위원회에선 ESG 원칙을 더욱 철저히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