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입시에서 소수 인종을 과도하게 우대한 하버드대 학칙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40년간 유지된 판례를 뒤집은 이번 결정으로, 명문대 입시에서 역차별을 받아온 한국 등 아시아계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문이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연방대법원은 29일(현지시간) 이날 비영리단체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소송에서 해당 입시 프로그램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1960년대 존 F 케네디 행정부 시절 인종 차별 완화를 목적으로 도입한 이른바 '어퍼머티브 액션'(적극적인 조치)은 수 십년 간 대학 입시에 폭넓게 적용됐으나 이번 판결로 대폭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방대법원은 "너무 오랫동안 많은 대학이 개인 정체성의 핵심인 도전과 노력, 쌓은 기술, 배운 교훈이 아니라 피부색을 근거로 입학 여부를 판단해왔다"며 "우리 헌법 역사는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 입학 프로그램은 정당하고 객관적인 고려 없이 (부정적인 선입견을 포함한)인종적 요소를 입시에 사용했다"며 "평등보호조항을 위반한 이 같은 제도는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입시에 인종을 고려하지 하지 않고 저소득층 배려 등 다른 방식으로도 소외 계층 보호를 할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연방대법원은 "인종차별은 다른 인종차별을 통해 해소될 수 없다"며 "인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다른 형평성 개념에 기반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미국의 아시아계 학생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SFA는 2014년 공립대인 노스캐롤라이나대와 사립대인 하버드대를 상대로 "신입생 선발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을 우대한 탓에 아시아계와 백인 지원자들이 과도하게 역차별을 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전체의 6%에 불과하지만,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입학생의 20%이상을 차지하면서 '우세집단'으로 분류돼 높은 성적을 얻고도 대학에서 떨어지는 일이 잦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SFA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하버드대에 지원한 16만 명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 아시아계 학생들이 '개인 평점'에서는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대가 지원자의 긍정적 성향, 호감도, 용기 등 주관적 평가 항목으로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1·2심은 "대학이 인종별로 정원을 할당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여러 전형 요소 중 하나로 인종을 고려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취지로 여러 차례 반복된 기존 판례를 들어 대학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례를 뒤집었다.
그러나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반발도 상당하다. 1996년 캘리포니아주가 인종에 따른 대입 우대를 금지한 뒤 버클리대와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등에선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의 입학 50% 가량 줄어들었다. 미국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이 또 한 번 수 십 년간 확립된 판례와 진보에 역행해 사실상 소수인종 대학 입학 우대 정책을 종료시켰다"며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미국의 이상을 대법원이 바꿀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