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용어의 차이는 있지만 벤처기업이 등장하기 시작한 1980년대를 그 시작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전한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벤처캐피털(모험자본)이 대중화됐고, 이들이 투자한 벤처기업이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지만 우리는 그보다 조금 늦은 편이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등장한 벤처 1세대들은 정보화 흐름과 맞물려 정보기술(IT) 등 제조업을 혁신하는 기업이 많았다. 휴맥스의 변대규, 지금은 고인이 된 메디슨의 이민화 등이 대표적인 1세대 벤처창업가들이다. 이 시기에 벤처기업과 벤처투자에 대한 법 제도가 정비되면서 본격적인 벤처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벤처기업이 양적·질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벤처붐’이 전개된다. 지금도 스타트업의 다수는 디지털경제 영역에서 성장하고 있는데,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대중적 보급과 함께 디지털경제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게임, 포털 등 다수의 벤처기업이 인터넷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다음의 이재웅, 네이버 이해진, 넥슨 김정주, 엔씨소프트 김택진 등이 2세대 벤처창업가의 대표주자다.
3세대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주인공이었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인 ‘거품 붕괴’ 이후 벤처투자 암흑기가 이어졌지만, 2000년대 말 스마트폰과 함께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크게 성장하는, 본격적인 스타트업의 시대가 열린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로 창업해서 글로벌 기업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들은 디지털경제의 주류가 됐다. 창업 극초기부터 유니콘, 데카콘 기업까지 성장하는 데 다양한 투자자와 투자기법이 등장했고 생태계는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우리나라도 2010년대 초반 대비 2020년대 초반에 스타트업 투자가 9배가량 커졌다. 배달의민족의 김봉진, 야놀자 이수진, 토스 이승건 등이 3세대 창업가들을 대표한다.
이 같은 혁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창업가들의 ‘혁신 DNA’가 계승되고 확산된다는 점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성공한 창업가 다수는 벤처투자자가 되거나 연쇄 창업을 하는 등 생태계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양분이 된 ‘페이팔 마피아’처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다음과 네이버, 배민 출신 창업가와 투자자, 생태계 구성원을 만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본질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스타트업에서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혁신의 DNA를 계승하고 확산시키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 위험의 깊이는 낮아지고 성장의 폭은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