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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기축통화' 미국 달러화의 위상이 끄떡없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달러화에 맞설 대체 통화 체제를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설문 결과다.
27일(현지시간) 영국 공적통화금융기구포럼(OMFIF)이 각국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한 연례 설문조사에 의하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속도가 '점진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것으로 집계됐다. OMFIF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산하 싱크탱크다.
전체 외환보유액에서 현재 평균 58%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달러화 비중이 10년 후에도 54%에 달할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신흥국 정상들이 달러화의 위세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대안 통화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실제 달러화 지위에 변동을 주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 조치로 러시아 중앙은행 약 3000억달러 규모 해외 자산을 동결한 것은 신흥국의 불안과 탈달러화 움직임을 촉발시켰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신흥국들은 달러화 의존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세계 무역에서 미국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달러화의 지배력이 점차 감소해온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달러화 비중은 2000년 초 한때 70% 이상에 달하기도 했지만,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니킬 상하니 OMFIF 전무이사는 "탈달러화는 지난 10여년간 역사적 추세"라고 말했다. 신흥국일각에서 제기되는 '달러화 배척' 움직임과는 별개인 구조적 추세에 불과하다는 설명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각국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 관리자들이 이러한 추세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점을 강조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2년간 달러화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늘릴 계획"이라고 답한 중앙은행은 16% 였다. 반대로 "줄일 계획"이라고 답한 중앙은행은 10%로 나타났다. 향후 10년 동안 달러화 보유액을 낮출 것이라고 응답한 중앙은행은 6% 가량으로 집계됐다.
세계 최대 규모의 지급준비금 보유액을 자랑하는 중국은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자국의 위안화를 더 많이 채택하도록 만들기 위해 각종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상하니 전무이사는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미국과 중국의 긴장을 주시하며 당장은 중국에 투자하기를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13%만이 위안화 보유를 늘릴 것이라고 답했는데, 이는 작년 30% 이상에서 대폭 후퇴한 수치다. 다만 이들은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약 3%에서 10년 뒤에는 6%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