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침대산업을 개척한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94세.
에이스침대는 27일 안유수 회장이 전날 밤 11시께 자택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30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안 회장은 6·25전쟁 중인 1951년 1·4 후퇴 때 부모와 떨어져 월남했다. 부산에 있는 미군 부대에서 잡역부로 일하던 중 처음으로 서양 입식 생활 문물인 침대를 접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방송국에 기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하며 가구점에 드나들면서 침대 사업에 눈을 떴다. 큰 가구점이지만 침대가 없는 걸 보며 ‘시장을 개척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29세이던 1963년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에이스침대공업사를 차려 지금의 에이스침대로 키웠다. 당시 국내엔 변변한 침대 제조 기술은커녕 제작 기계도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스프링 침대를 제조한 사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 회장은 미군 부대에서 미국 유명 브랜드 중고 침대를 구해 분해하며 제품화에 매진했다. 스프링부터 프레임까지 직접 만들며 한국형 침대 개발에 몰두했다. 안 회장이 나무를 스프링 모양으로 깎기를 거듭하고 손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강선을 감은 끝에 회사 설립 1년 만에야 스프링 제조 기기를 개발한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에이스침대 관계자는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과 체형에 맞는 매트리스를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적극적인 설비 투자로 ‘잘 잘 수 있는 침대’의 과학적 토대를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쳤다”며 “에이스침대가 국내 최초의 매트리스 스프링 제조설비, 침대업계 최초 KS마크 획득, 300개의 특허 등 수많은 ‘최초’ 타이틀을 갖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1992년엔 ‘에이스침대 침대공학연구소’를 열고 침대 기술 독립화에 공을 들였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는 이때 만들어졌다. 이 연구소는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아 2006년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국내 침대업계에서 유일한 국제 공인 시험 기관으로 지정됐다. 안 회장은 경영 능력과 침대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과 철탑산업훈장, 대통령상(3회), 국무총리상(4회)도 받았다. 그가 키운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의 지난해 매출은 각각 3462억원, 2857억원에 달한다.
안 회장은 생전에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도 적극적이었다. 1999년부터 25년 동안 설과 추석 등 명절마다 지역사회에 백미를 기부해온 게 좋은 예다. 제1공장과 본사가 있는 경기 성남시 일대 소외계층 사이에선 ‘쌀 퍼주는 침대 할아버지’로도 통한다. 지금까지 기부한 백미는 10㎏ 기준 13만6560포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2억원어치다.
안 회장은 서울 광성고와 동아대 정경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단국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김영금 씨와 아들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장남)·안정호 시몬스침대 대표(차남), 딸 안명숙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30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용인 선영이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