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 수요자·전문가를 참여시키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공급자인 의사단체와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해 협의했지만 앞으로는 수요자 의견도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분과위원회나 전문위원회를 다음달 출범시킬 계획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정부와 의사들에게 맡겨두기에는 파급력이 너무 큰 사회적 의제라는 점에서 올바른 방향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잇단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통해 의료서비스는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절감한 만큼 이해관계자 간 다양한 논의가 필수다. 의대 정원이 17년째 3058명으로 동결돼 의사 부족 사태가 빚어진 것부터 정부와 의사단체 간 밀실 힘겨루기의 결과다.
정부가 뒤늦게 ‘수요자 의견 수렴 절차’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 의대 정원 확대에 거칠게 반대해온 의사들은 이번에도 집단행동을 불사할 태세다. 최근 의정협의체에서 정원 확대 관련 논의가 진전된 뒤 대한의사협회 내부에서는 회장 탄핵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기에다 조 장관의 ‘수요자 참여’ 발언이 더해지자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는 격한 성명까지 나왔다. 의사들의 주장에도 경청할 대목이 많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인력이 늘지는 않는다. 지방 의대생을 더 뽑는다고 지역 의료인력이 자동 확충되는 것도 아니다. 수술·소아·응급 보험수가를 조정하고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의료의 기본 틀을 재설계하는 더 근본적인 과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의사 수 절대 부족이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6명에 한참 뒤처진다. 정원을 늘리면 대우가 낮아지고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를 부른다는 걱정도 단견이다. 로스쿨 도입으로 매년 2000여 명의 변호사가 배출되지만 법률 전문가의 위상은 굳건하다. 사내 변호사 시장이 커지는 등 진출 분야가 확대되고 사회 전반의 법률서비스 수준도 높아졌다. 정원 동결에 집착하며 실력 행사에 의존하는 행태는 의료인들의 고립만 부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