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명.’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부서에서 일하는 정규직 의사 수다. 무기계약직을 포함해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25분의 1 수준이다. 의약품 임상과 판매 허가 업무를 맡는 심사인력 부족이 전문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식약처, 인력·예산 부족 ‘이중고’식약처 내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심사부서 인력은 184명이다. 이 중 의사 면허를 보유한 심사인력은 한 명도 없다. 비정규직(공무직)으로 범위를 넓혀도 전체 심사인력 364명 중 의사는 19명에 불과하다. FDA에서 일하는 의약품 심사인력 8050명 중 의사는 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약품이 사람 몸에 들어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심도 있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의사, 생리학자 등 전문인력이 필수다. 예컨대 시판 후 약물 안전성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전담하는 전문인력만 40명은 필요하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하지만 식약처에는 전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식약처 심사인력 수는 일본 식약청(566명)과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그친다”며 “전문 심사인력이 태부족하고 예산도 넉넉하지 않다 보니 미국 일본 유럽 등에 비해 이중고에 시달리는 면이 있다”고 했다. 수억원대 수수료 받는 FDAFDA와 식약처의 근본적인 차이는 기관 특성에서 비롯된다. FDA는 컨설팅기관에 가깝다. 재정의 절반을 제약·바이오 기업에서 받는 수수료로 채운다. 신약 개발 기업이 FDA 심사를 받기 위해 내야 하는 수수료는 324만2000달러(약 42억원)다. 대신 임상 성공을 위해 어떤 전략을 짜야 할지, 기본적인 문서 양식부터 앞으로 제출해야 할 자료까지 꼼꼼하게 코치해준다. 이런 이유로 기업은 기꺼이 거액의 수수료를 낸다. 이 수수료 수입을 기반으로 몸값 높은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구조다.
반면 식약처는 살림을 대부분 세금에 의존한다. 신약 심사수수료는 803만1000원에 불과하다. 보수가 낮다 보니 전문인력 채용공고를 내도 정원에 미달하기 일쑤다. 심사 방식도 FDA와는 딴판이다. 신약이 나올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하기보다 감사원의 업무 감사 대상이 되지 않게 정해진 가이드라인에 맞춰 보수적으로 업무를 집행한다는 게 업계 불만이다. FDA와 식약처에서 모두 심사를 받아본 바이오기업 대표는 “식사 준비에 비교한다면 FDA는 어떤 나물을 얼마만큼 사야 하는지, 나물이 시들었다면 어떤 다른 시장에 가야 하는지까지 코치해준다”며 “반면 식약처는 이 나물을 먹으면 배탈이 날지 아닌지 정도만 코치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심사재량권 늘려야”업계에서는 식약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허가당국의 역할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조직의 경직성·보수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식약처가 유럽, 미국 등 선두주자 규제 기관에 비해 인력과 예산 측면에서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어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코오롱 ‘인보사 사태’를 기점으로 식약처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진 것이 사실”이라며 “식약처 공무원들이 새로운 약을 탄생시키겠다는 모험정신을 갖출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 등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