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밀가루 가격 인하를 제분업계에 요구했다. 제분(밀가루)·라면업계는 다음달 가격 인하에 나설 전망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6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한국제분협회 회원사와 간담회를 열고 국제 밀 가격 인하에 따라 국내 밀가루 가격을 조정해줄 것을 업계에 공식 요청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 삼양사, 사조동아원 등 국내 대형 제분업체가 모두 참석했다. 제분업계는 “물가 안정을 위해 7월에 밀가루 출하가격 인하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18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제 밀 가격이 내린 만큼 기업들이 적정하게 라면 가격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한 지 약 1주일 만에 열렸다. 당시 라면업계가 원료 가격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반응을 내놓자 핵심 원료인 밀가루로 ‘전선(戰線)’이 넓어진 것이다.
제분업계에선 이미 정부 방침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다음달부터 농심 등 제분 대량 구매처에 판매장려금을 높이는 방식을 포함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제분 가격이 5% 안팎 인하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밀 선물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작년 3월 t당 475달러로 치솟은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 올해 5월 평균 228달러로 떨어졌다.'먹거리 물가전쟁' 전선 확대…식품업계 "인건비 늘었는데" 한숨정부가 라면에 이어 밀가루까지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나선 이유는 원료인 농축산물 가격 하락을 식품업계가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식품업계가 식품 원료에 대한 할당관세 등 지원만 받고 가격은 내리지 않으면서 과다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식품업체 농심은 올해 1분기 매출 8604억원, 영업이익 63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6.9%, 영업이익은 85.8% 늘었다. 오뚜기도 1분기 매출(8567억8400만원)이 전년 동기보다 15.4%, 영업이익(653억7100만원)은 10.7% 증가했다.
식품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라면업체들은 지난 2년간 떨어지던 이익률이 겨우 회복됐고, 제분업체들은 올해 실적이 안 좋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농심은 2021년과 2022년 3%대에 머무른 영업이익률이 1분기에 가까스로 7%대로 올라왔다. 이는 비교 대상으로 꼽히는 일본 1위 닛신이 매년 8~10%의 이익률을 꾸준히 내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CJ제일제당은 올 1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2%, 80% 줄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밀가루 원료인 원맥은 6개월~1년 앞서 선물로 구매하고 있어 현재 사용하는 밀은 국제가격이 높은 수준일 때 구입한 것”이라며 “물류비와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제분과 라면 가격 모두 비싸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식품업계는 정부의 압박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하나둘 가격 인하에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은 밀가루 값이 내려가면 라면 가격을 인하할 전망이다. 이는 삼양식품 등 다른 업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은 우유 등 다른 식품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황정환/하수정 기자 jung@hankyung.com